대한민국의 설계자들 - 학병세대와 한국 우익의 기원
김건우 지음 / 느티나무책방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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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터진 '박근혜 - 최순실 게이트'는 한국 보수의 실체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다. 이 사건을 통해 반공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틈만 나면 국가를 비상사태에 몰아넣고, 자유를 명분으로 재벌의 배를 불리고 권력자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고, 언론을 이용해 국민의 눈과 귀와 입을 틀어막아온 이들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런데도 여전히 부끄러운 줄 모르고 반성조차 하지 않는 보수 정치인들을 보면 답답하다 못해 화가 난다. 인간으로서의 도리와 염치도 모르면서 무슨 보수인가. 한국 보수의 수준이 고작 이 정도란 말인가. 


한국에서 보수를 자처하는 이들은 사실 보수가 아닌지도 모른다. 이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는데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을 읽고 확신했다. 한국 우익의 기원을 추적하는 책이라고 해서 친일파나 수구 반공주의자들의 계보를 담은 줄 알았는데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저자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세력들 중에 진정한 우익이라고 자부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첫째, 일제에 부역한 사실이 없거나 그 사실을 철저히 참회할 것. 둘째, 북한과 일정 정도 이상 거리를 둘 것. 이에 따르면 이승만, 장면, 박정희 등 친일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은 인물들과 이들을 계승하는 인물들은 스스로를 우익으로 칭할 (상대를 좌익이라고 부를) 자격조차 없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진정한 우익, 진정한 보수는 누구인가. 저자는 장준하, 김준엽, 지명관, 서영훈, 백낙준, 장기려, 선우휘, 김성한, 양호민, 류달영, 김수환, 지학순, 조지훈, 김수영 등 의외의 인물들을 거론한다. 이들 중에는 소위 '좌익 인사'로 분류되는 인물들도 있는데 사상적 배경이나 활동 내용을 보면 우익으로 분류될 만하다. 이른바 '학병 세대'로 불리는 이들은 1920년 전후 다섯 해 정도에 출생해 일제 시대 최고의 고등교육을 받았으나 나이가 어린 관계로 친일 전력은 없다. 이북 출신으로 반공 이데올로기가 투철하며, 기독교 신자로서 미국 문화에도 개방적이다. 친일 전력을 청산하지도 않고 독재를 한국식 민주주의로 왜곡한 가짜 우익 말고, 자유를 갈망하고 미국식 민주주의를 추구한 이들이야말로 한국 보수의 원조라고 할 만하지 않은가. 


학병 세대는 또한 대한민국이 서구와 유사한 발전 수준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산업화, 세계화를 해야 한다고 믿었으며, 정부 수립 이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교육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며 대한민국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친일 세력을 철저히 배격했으며 자유를 억압하는 이승만, 박정희 독재 정권에 항거했다.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이고 한국 보수의 원조인데도 역사 교과서에서 이들의 이름을 찾기가 힘들고, 그나마 이들의 이름이 나오는 책에서는 이들을 보수가 아닌 진보, 우익이 아닌 좌익 인사로서 소개한다. 그렇다면 현재 대한민국의 보수, 우익을 자처하는 이들은 누구를 계승하고 있는가. 누구를 대표하는가. 답은 이미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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