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 - 하 ㅣ 소시민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4월
평점 :
요네자와 호노부를 알게 된 건 '고전부' 시리즈를 통해서이고, 요네자와 호노부의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도 '고전부' 시리즈이지만, 앞으로는 '소시민' 시리즈도 눈여겨봐야 할 것 같다. 전권인 <봄철 한정 딸기 타르트 사건>과 <여름철 한정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도 예사롭지 않았는데,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은 '작가가 다음 권을 어떻게 쓰려고 하나' 하는 괜한 걱정이 들 정도로 (좋은 의미로) 충격이 컸다.
주인공은 전권과 마찬가지로 고바토와 오사나이다. 뛰어난 관찰력과 남다른 추리력을 들키지 않고 평범한 '소시민'으로 사는 것이 목표인 두 사람은 여름에 발생한 유괴 사건 이후 주위의 시선을 끌지 않기 위해 떨어져 있기로 한다. 가을이 오고 새 학기가 시작되자 고바토는 같은 반의 나카마루라는 여학생으로부터 고백을 받고 사귀기로 한다. 오사나이 역시 1년 후배이자 신문부원인 우리노의 열렬한 구애를 받아 그와 사귀게 된다.
초반부터 고바토와 오사나이에게 각각 여자친구, 남자친구가 생겨서 이번엔 웬일로 달달한 연애물인가 했더니 연쇄 방화 사건이 발생하면서 분위기가 돌변한다. 연쇄 방화 사건은 고등학교 신문부가 다룰 일이 아닌데도 오사나이는 우리노에게 제대로 취재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하고, 오사나이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우리노가 취재에 나서면서 이야기는 급물살을 탄다.
고바토는 고바토대로 주말마다 나카마루와 데이트를 즐기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추리 본능(!)이 발휘되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는다. 누가 시키거나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만원 버스 안에서 누가 먼저 내릴지 알아맞히지 않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나카마루가 싫어하는 음식이 뭔지 가려내지 않나, 나카마루의 오빠 집에 든 도둑이 누군지 밝혀내지 않나 시종일관 추리를 한다. 독자인 나로선 고바토가 일상에 숨겨진 수수께끼를 하나씩 해결하는 것이 재미있지만, 여자친구인 나카마루로선 살짝 불쾌할 수도 있을 터. 이런데도 소시민 행세를 계속할 수 있을까. 심히 걱정스럽다.
그대로는 떫은 자칭 소시민이 사람들 사이에 녹아들기 위한 방법. 시럽처럼 달콤한 연인 곁에서, 설탕 옷을 겹쳐 입어 자기도 달콤해지려는 것도 한 가지 방법. 오사나이는 그것을 기대했다고 확실히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결국 그 방법은 실패했다. 마롱글라세 방식은 실패였다. (247쪽)
그동안 나는 고바토와 오사나이가 '소시민' 운운하면서 평범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남들보다 관찰력 좀 뛰어나고 추리 좀 잘하는 게 엄청나게 대단한 재능인 것 같지 않은데 감추려고 애쓰는 게 우스웠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타고난 성향을 감출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두 사람이 허탈해 하는 장면을 보며, 사람이 타고난 대로 살지 못하고 주위 환경이나 사회 분위기에 맞춰 산다는 게 얼마나 고단하고 괴로운 일인지 생각했다. 웬만한 노력 없이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 수 없다는 것도.
평범한 소시민이 되고 싶지 않고 될 수도 없다는 걸 깨달은 두 사람이 서로의 곁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장면은 나만 로맨틱했나. 두 사람이 아직 서로를 연애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지만, 없으면 허전하고 안 보면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 마음이 사랑이다. 비록 오사나이에게는 고바토보다 달콤한 디저트가 우선인 것 같지만, 고바토가 나카마루와 함께 있을 때 오사나이를 떠올린 걸 보면 고바토에게는 오사나이의 존재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게 아닌지. 아, 정확히는 오사나이를 떠올린 게 아니라 오사나이와 함께 먹은 디저트를 떠올린 것이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