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파시스트들은 의지의 이름으로 이성을 거부했다. 그들은 국민을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지도자들이 내세운 영광의 신화에 열광하며 객관적 진실을 부정했다. 그들은 세계화에 맞서, 세계화가 만들어 내는 복잡한 문제들이 국가에 대한 음모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23. 1938년 초, 독일에서 권력을 확고히 장악한 아돌프 히틀러는 이웃 나라 오스트리아를 병합하겠다고 위협했다. 오스트리아 총리가 협박에 굴복한 뒤, 오스트리아 유대인의 운명을 결정한 것은 바로 오스트리아인들의 예측복종이었다. 현지의 오스트리아 나치는 유대인들을 붙잡아 거리에 새겨진 독립국 오스트리아의 상징을 문질러 지우게 했다. 여기서 결정적인 것은 나치가 아니었던 평범한 사람들이 이 광경을 흥미롭게 그리고 즐겁게 지켜봤다는 사실이다.


35. 아마도 토머스 제퍼슨이 <영원한 경계는 자유의 대가이다>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당대에 이 같이 말한 미국인들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 말을 외부를 향한 바람직한 경계, 즉 그릇된 생각을 가진 외부의 적들을 끝없이 경계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곤 한다. (중략) 그러나 이 격언의 참뜻은 완전히 다르다. 그 뜻은 미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의 자유를 갉아먹고 기어코 끝장낼 <미국인들>을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는 것으로, 여기서 경계의 대상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바로 인간의 본성이다.


37. 모든 선거는 마지막 선거가 될 수 있다. 아니면 적어도 표를 던진 사람의 생애에서 마지막 선거일 수 있다.


39. 모든 시민이 동등한 한 표를 행사하도록, 각각의 표를 동료 시민이 쉽게 집계할 수 있도록 불공정한 선거 제도를 고치려면 많은 일을 해야 한다. 우리에겐 종이 투표지가 필요하다. 멀리서 조작할 수 없고 언제라도 다시 헤아릴 수 있기 때문이다.


43. 삶은 정치적이다. 세상이 우리의 기분을 살피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행위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사소한 선택들은 그 자체로 일종의 투표 행위다. 그런 선택 하나하나가 장래에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치러질 가능성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일상의 정치에서 우리의 말과 행동은, 또는 말과 행동의 부재는 대단히 중요하다.


46. 1978년, 반체제 사상가 바츨라프 하벨이 <무력한 자들의 권력>이라는 글을 썼다. 이 글에서 그는 체제의 목적과 이데올로기를 믿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도 사람들을 억압하는 체제가 유지되는 이유를 설명하고자 했다. 그는 가게 유리창에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글귀를 붙여 둔 한 채소 장수를 예로 들었다.

  <공산당 선언>에 나오는 이 인용구의 의미를 채소 장수가 실제로 지지한 것은 아니다. 그가 유리창에 그 구절을 써 붙인 이유는 그래야만 당국의 간섭을 받지 않고 일상 생활로 물러나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같은 논리를 따를 때, 공적 영역은 충성의 상징으로 뒤덮이고, 저항은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된다.


47. 말하자면 채소 장수는 사실상 그의 진심이 무엇이건 간에 정권이 들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자신의 충성을 선언한 것이다. 즉 미리 정해져 있는 의례를 받아들임으로써, 겉모습을 현실로 받아들임으로써, 주어진 게임의 규칙을 받아들임으로써, 결과적으로 그 게임이 계속 지속될 수 있게 했고, 무엇보다도 일단 그 게임이 존재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하벨은 물었다. <아무도 그 게임을 하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64. 홀로코스트를 생각할 때면, 우리는 아우슈비츠와 기계화된 비인격적 죽음을 떠올린다. 이것이 독일인들이 홀로코스트를 떠올리는 편리한 방식이다. (중략) 본질적으로 친위대 지휘관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명령을 받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전부 살인자였다. 


65. 일부는 신념을 가지고 살인에 임했다. 그러나 다수는 단지 자기만 발을 빼는 것이 두려웠을 뿐이다. 순응주의 말고도 다른 요인들은 있었다. 그러나 순응주의자들이 없었다면 그 엄청난 잔혹 행위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121. 자유에 관해 생각할 때, 우리는 보통 일개 개인과 강력한 힘을 가진 정부 사이의 다툼을 떠올린다. 우리는 개인에게 권한이 부여되어야 하고, 정부가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다 좋다. 그러나 자유의 한 가지 요소는 누구와 함께할지를 선택하는 것이다. 또 자유를 방어하는 수단 가운데 하나는 구성원을 유지하기 위한 집단 활동이다. 이것이 우리가 우리의 친구, 우리의 가족에 이익이 되는 활동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다. 이러한 활동이 명시적으로 정치적일 필요는 없다. 이를테면, 체코의 반체제 사상가였던 바츨라프 하벨은 좋은 맥주를 빚는 예를 들었다.  


133. 자유와 안전을 맞바꾸는 건 전혀 불필요한 거래다. 경우에 따라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하나를 잃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잇다. 자유를 대가로 치러야만 안전을 얻을 수 있다고 단언하는 자들은 대개 자유도 안전도 줄 생각이 없다.


144. 제국의회 화재 사건이 독재자들에게 주는 교훈은 한순간의 충격이 영원한 복종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본능적인 공포와 슬픔이 제도를 파괴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용기란 두려워하지 않거나 슬퍼하지 않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용기는 테러 경영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것에 저항하는 것이다. 공격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즉 저항하는 것이 가장 어려워 보이는 바로 그 순간부터 저항해야 한다.

  제국의회 의사당 화재 이후, 해나 아렌트는 <누구든 한낱 방관자로 머물 수 있다는 생각을 나는 더 이상 갖지 않게 되었다>고 썼다.


148.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주의자인데, 국가주의자란 애국자와 같은 것이 전혀 아니다. 국가주의자는 우리에게 최악의 존재가 되라고 권장하는 동시에, 우리가 최고라고 말한다. 조지 오웰에 따르면 국가주의자는 <끝없이 권력과 승리, 패배, 복수에 관해 생각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무관심한> 경향이 있다. 국가주의는 상대주의적이다. 유일한 진실은 우리가 다른 이들을 생각할 때 느끼는 분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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