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있을 수 있다면 1
안나 가발다 지음, 이세욱 옮김 / 북로그컴퍼니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파리의 청춘들은 서울의 청춘들보다 훨씬 멋지고 우아한 생활을 할 것이라고 제멋대로 생각했는데, 적어도 이 소설을 보면 파리나 서울이나 청춘들의 생활은 별다를 것이 없다. 미술대학을 졸업한 카미유는 현재 건물 청소부로 일하며 최저 생계비를 번다. 거식증에 걸려 영양 상태는 좋지 않고 보살펴줄 가족조차 없어서 대학 시절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아파트 맨 꼭대기 층 다락방에 살고 있다. 난방 시설은커녕 화장실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곳에서 생활하는 카미유의 모습은 고시원 쪽방에 모여 사는 한국의 청춘들을 떠올리게 한다. 


직업이 있다고 생활이 낫지는 않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십오 년째 파리의 유명 레스토랑에서 셰프가 되기 위한 수련을 받고 있는 프랑크는 잠 잘 시간도 없이 일한다. 일주일에 단 하루 쉬는 월요일에는 유일한 혈육인 할머니를 보러 가야 하고, 양로원에 가서는 밀린 잠을 보충하느라 할머니와 제대로 대화할 여유가 없다. 할머니가 사는 양로원에 얼마 안 되는 월급의 일부를 보내느라 미래에 대한 계획 따위 할 수 없는 프랑크는 매일 밤 새로운 여자를 만나 쾌락을 즐기는 것만이 낙이다. 휴식 시간에 레스토랑을 빠져나와 필리베르의 아파트에서 한숨 자는 때만이 그에게 허락된 유일한 휴식이다. 


결혼, 출산은커녕 사랑할 여유조차 없는 두 사람은 필리베르의 아파트에서 처음 만난다. 필리베르라고 생활이 더 낫지는 않다. 쇠락한 귀족 가문의 후손인 그는 상속 분쟁 중인 아파트에 임시로 살면서 미술관 앞 기념품 가게에서 일하고 있다. 필리베르는 아파트 맨 꼭대기 층에 사는 이웃인 카미유가 비참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자기 집에서 살게 한다. 룸메이트인 프랑크로서는 군식구가 늘어난 게 불만이다. 자신을 받아준 룸메이트인 필리베르를 카미유에게 빼앗긴 게 화도 난다. 카미유 또한 자상한 필리베르와 달리 자기만 보면 화만 내는 프랑크가 곱게 보이지 않는다. 


만나기만 하면 싸우던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은 점점 동정으로, 연민으로, 사랑으로 바뀐다. 카미유는 문학이나 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먹물들의 전유물로만 취급하는 프랑크가 안타깝고, 프랑크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을 모르는 카미유가 애처롭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으로 조금씩 자신을 내보이던 두 사람은 점점 서로의 세계에 발을 들이밀고 마침내 같은 영역 안에 들어가게 된다. 카미유는 오랫동안 세상에 공개하길 꺼렸던 그림들을 선보일 용기를 내게 되고, 프랑크는 험한 말과 문란한 생활로 감췄던 자신의 속마음을 카미유에게 고백한다. "걱정하지 마. 우린 해낼 거야. ... 우린 잃을 게 없어. 가진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말이야...... 자아, 가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파리에서 인생의 가장 어두운 시간을 보내는 청춘들을 보느라 지난 며칠 밤을 꼬박 새웠다. 비록 몸은 지치고 피곤함이 몰려오지만 마음만은 뿌듯하다. 누구보다 예술을 사랑하고 그에 걸맞은 재능을 가졌지만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날개를 펴지 못하는 카미유와 필리베르. 셰프가 되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지만 실은 그 노동조차 삶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프랑크. 외따로 떨어져 있던 세 사람이 함께 있게 되고 '함께 있을 수 있다면' 그 어떤 것도 필요 없다는 걸 깨달아가는 모습이 참 따뜻하고 달콤했다. 나에게도 이런 친구, 이런 사랑이 있었으면. 


프랑크와 카미유를 이어주는 인물이 다름 아닌 프랑크의 할머니인 폴레트라는 설정도 신선하다. 세 사람은 고심 끝에 폴레트를 양로원에서 파리로 데려오고, 비교적 시간 여유가 있는 카미유가 폴레트를 돌보게 되면서 카미유는 몸에 대한 미움을 지우고 어머니에 대한 증오를 거둔다. 그야 증오를 완전히 거두기란 어렵겠지만, 소중한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도 부족한데 누구를 미워할 겨를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만으로도 그녀가 한층 성숙하고 더 큰 사랑을 만났다는 증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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