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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데이비드 실즈 지음, 김명남 옮김 / 책세상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나는 위대한 인물이 지혜를 말한다는 생각을 이제 믿지 않는다.
나는 위대한 인물이 방에서 홀로 걸작을 쓴다는 생각을 이제 믿지 않는다.
내가 믿는 것은 병리학 실험실, 쓰레기 매립지, 재활용 센터, 사형 선고, 미수로 끝난 자살의 유언장, 구원을 향한 돌진으로서의 예술이다.
우리의 예술은 각자 그것을 자기 자신에 대항하여 사용할 때 가장 활기차고 위험하다.
내가 내 딱지를 긁어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친구 마이클에게 이 책의 제목을 알려주었더니, 그는 "문학은 누구의 삶도 구한 적 없어"라고 말했다.
문학은 내 삶을 구했다. 아주 가까스로, 라고 해야겠지만. (227쪽)
데이비드 실즈의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를 두 번 읽었다. 좋아서 두 번 읽은 게 아니다. 한 번 읽고 남들이 왜 좋다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되어서 두 번 읽었다. 그의 후속작 <문학은 내 삶을 어떻게 구했는가>는 한 번 읽었다. 이번에는 읽자마자 이해가 되어서 한 번 읽은 게 아니다. 두 번 읽어도 이해가 안 될 것 같아서 한 번 읽었다.
국내에 출간되지 않(았거나 내가 읽지 않)은 책이 많이 나와서 그렇지 글 자체는 어렵지 않다. 그가 어쩌다 문학을 만났고 글쓰기를 업으로 삼았으며, 그것이 그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가 담담하고 위트 있게 서술되어 있다. 저자는 자신의 글쓰기를 '내가 내 딱지를 긁어대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저자가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딱지 긁기'와 관련이 있다. 저자는 어려서부터 심한 말더듬증을 앓았고, 말로 소통하지 못하는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딱지 긁기'는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저자는 대학 시절 여자친구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보며 여자친구 눈에 비친 자신을 관찰했다. 명작으로 손꼽히는 책들을 읽고 감동하지 못하자 자기만의 명작을 찾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글쓰기에 적응하지 못해 책과 책을 콜라주 하는 방식의 새로운 글쓰기를 창안했다. 만능 스포츠맨에 왕성한 성생활을 즐기고 아흔이 될 때까지 병원 신세 한번 져본 적 없는 아버지에게 평생 열등감을 느꼈지만, 그 이야기를 책으로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언뜻 보기에는 삶이라는 망망대해에 빠진 저자가 문학이라는 보트를 만나 구원을 받은 듯하지만, 수많은 보트 중에 문학이라는 보트를 잡은 그의 선택이야말로 탁월했다. 온전치 않은 삶, 순리대로 풀리지 않는 삶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오로지 문학과 예술 주변에만 있으니. 딱지를 긁기보다는 새 살이 돋기를 기다리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아직은 이 세계가 전적으로 이해되진 않는다. 이해되면 그때는 데이비드 실즈가 좀 더 쉽게 읽힐까. 실즈의 다음 책이 한국에 나오면 읽을까. 읽을 것이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