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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따위 안 읽어도 좋지만 - 세계적 북 디렉터의 책과 서가 이야기
하바 요시타카 지음, 홍성민 옮김 / 더난출판사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세계를 책을 읽는 사람과 책을 읽지 않는 사람으로 나누는 것에 의미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책 읽는 사람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은밀한 희열이 있다. 뭔가를 읽는 것으로 어딘가로 끌려가 미지와 조우해 웃고, 화내고, 두근두근하고, 그리고 그런 사소한 감촉을 자신 안에 담아두면서 매일을 보내는 책 읽는 사람에게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238~239쪽)
책의 부제가 '세계적 북 디렉터의 책과 서가 이야기'이기에 북 디렉터로서 책을 진열하고 판매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인 줄 알았다. 이를테면 우치누마 신타로의 <책의 역습> 같은 책 말이다. 읽기 시작한 지 몇 분도 되지 않았을 때 그런 기대는 무너졌다. 이 책은 출판 또는 서점에 관한 책이라기보다 서평집에 가깝다.
기대가 무너졌다고 실망한 건 아니다. 저자와 관련이 있는 책, 창작자의 시선이 돋보이는 책, 여행지에서 만나는 책, 일상에서 발견한 책, 축구에 관한 책, 산다는 것에 관한 책 등 수많은 책 이야기가 쏟아져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저 즐거웠다. 책이 아니라 '책장'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답게 많은 책을 알고 있고 책과 책을 연결하는 능력이 뛰어나서 책을 읽는 내내 감탄이 나왔다.
일본 도서를 많이 읽다 보니 익숙한 책 제목, 작가 이름도 많고,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책 중에 읽어보고 싶은 것이 많아 반가웠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도쿄 오징어 클럽(요시모토 유미, 쓰즈키 교이치와 함께 특이한 곳을 여행하는 모임)과 함께 쓴 여행기 <지구를 방랑하는 방법>, 소설가 가쿠타 미쓰요, 만화가 구스미 마사유키 등 명사들이 감자 샐러드로 유명한 술집 서른여섯 곳을 엄선해 소개하는 책 <감자 샐러드가 있는 술집> 등은 조속히 국내에 출간되었으면 좋겠고, 출간되지 않으면 원서로 구입해 읽어야겠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많다. 비상구나 화장실 등을 글자가 아닌 그림으로 나타내는 픽토그램은 1964년 도쿄 올림픽 때 처음 만들어졌다. 만화가 야나세 타카시는 참혹한 전쟁과 지독한 생활고를 겪으며 '뒤집히지 않는 정의는 사랑과 헌신뿐'이라는 신조를 가지게 되었고, 그 결과 자기 살을 떼어 불쌍한 아이들을 먹이는 호빵맨을 탄생시켰다. 이 밖에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이 분다>, 안노 히데아키의 <에반게리온>, 지바 현 후나바시 시의 비공인 캐릭터 '후낫시'의 인기 비결 등 일본 대중문화에 관한 해석도 흥미롭다(축구에 관한 이야기도 이 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데 축구에 문외한이라서 큰 재미를 느끼진 못 했다).
이 책은 저자가 만드는 책장을 닮았다. 저자는 북 디렉터로서 의뢰를 받고 콘셉트에 맞춰 책을 선별하고 연출하는 일을 한다. 목표는 '책이 읽고 싶어 하는 책장'을 만드는 것. 이 책이 꼭 그렇다. 읽고 싶은 책이 많아졌다. 이렇게 재미있는 책 읽기를 사람들은 왜 기피할까. 나의 바람과 달리 깊어지는 출판 불황에 마음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