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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 개정판
안나 가발다 지음, 이세욱 옮김 / 북로그컴퍼니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프랑스 문학은 어렵다.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했다. 발자크와 스탕달은 아무리 유명한 작가라도 작품에 진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알베르 카뮈, 르 클레지오는 작품 안으로 들어갈 수는 있었으나 출구를 찾기까지 몇 번이나 헤맸다. 그나마 쉽게 읽은 작가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정도였다.
안나 가발다의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는 프랑스 문학인데도 쉽다.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하지만 다 읽고 나면 마음에 묵직한 것이 남는다. 이 소설에는 사랑 때문에 상처 입은 여자 클로에와 그런 여자를 위로하는 남자 피에르가 나온다. 설정만 보면 두 사람이 이제 막 시작하는 연인 사이일 것 같지만, 클로에는 피에르의 며느리, 피에르는 클로에의 시아버지다. 피에르가 클로에와 클로에의 어린 두 딸을 데리고 시골집에 내려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남편의 외도에 대해 클로에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반응을 보인다. 한때는 나만을 사랑한다고 속삭였던 남자가, 결혼을 약속하고 아이를 둘씩이나 가진 남자가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자기를 떠나는 걸 이해하기 힘들어한다. 클로에는 피에르가 자신과 두 딸을 돌봐주는 걸 감사히 여기면서도 남편의 무책임함이 시아버지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의심한다. 결국 남편에 대한 원망을 피에르에게 쏟고 만다.
한편 피에르는 클로에한테 인간적인 연민을 느낀다. 자기 집의 식구로 들어와줘서 고마웠던 만큼, 아들의 외도로 인해 더는 예전처럼 지낼 수 없는 게 안타깝다. 결국 피에르는 오랫동안 숨겨왔던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클로에에게 털어놓는다. 피에르의 이야기는 자기 아들이 배신하고 떠난 여자에게는 결코 들려주고 싶지 않았을 이야기이다.
언뜻 들으면 피에르는 자신의 아들을 두둔하는 것 같다. 사랑은 변한다. 사람도 변한다. 지금은 상처받은 게 너뿐인 것 같지만 언젠가는 네 남편도 상처를 받을 것이다. 뻔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것만이 사랑에 관한 유일한 진실이다. 피에르는 클로에에게 너 자신을 아끼고 너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너는 이것보다 더 큰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위로한다. 허울 좋은 충고 같지만, 피에르로서는 힘들게 꺼낸, 진심 어린 충고다. 음의 문이 닫힌 지 오래인 클로에는 과연 피에르의 말을 알아들을까.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는 안나 가발다의 대표작으로, 전 세계 38개 국에서 번역되어 300만 부 이상 팔렸다. 한국에서는 2002년에 처음 출간되었는데 재출간해달라는 독자들의 요청이 많아서 올해 다시 출간되었다. <개미>, <제3인류> 등을 번역한 프랑스 문학 전문 번역가 이세욱이 번역해 문장이 매끄럽고 아름답다. 보랏빛의 세련된 표지도 마음에 든다. 안나 가발다의 다른 소설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