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 그 나이 먹은 당신에게 바치는 일상 공감서
한설희 지음, 오지혜 그림 / 허밍버드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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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나이를 먹어가는 것'에 관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다. 행여나 나이 드는 것에 대한 속 시원한 해답이나 교훈, 하다못해 작은 힌트라도 얻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 책을 들었다면 미리 사과하고 싶다. 나는 아직도 여전히 어떠한 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그런데 뒤집어 생각해 보면 이런 내 모습에 작은 희망을 품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모두 아무것도 모른 채 이 삶을 살아 내고 있으니까. (프롤로그 중에서) 


방 청소를 하다가 꽤 괜찮은 대기업 명함을 발견하고 전화해 보니 예전 남자친구였다. 외출하던 중 코트 속에 치마 입는 걸 깜빡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집으로 뛰쳐 들어왔다. 목욕탕에서 때를 밀고 있는데 생전 처음 보는 아이가 "엄마"라고 부르며 뒤에서 와락 끌어안았다. 엄마 손에 이끌려 가는 아이 왈, "저 아줌마도 엄마처럼 아가 가진 거야?" 오 마이 갓......! 


tvN <막돼먹은 영애 씨> 작가 한설희의 첫 에세이집 <나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영애 씨가 직접 썼나 싶을 만큼 코믹하고 진솔하다.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고 돈도 애인도 없이 사십 대에 접어든 저자. 자기보다 앞서 결혼하는 후배를 보면 부럽고, 육아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친구를 보면 안쓰럽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결혼 언제 하니?" 같은 독촉을 받으면 짜증이 치솟지만, 막상 어머니가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꼭 결혼하지 않아도 되지 뭐~." 같은 말을 하면 서운하다. 


저자처럼 '이렇게 사는 게 좋다!' 싶다가도 마음 한구석에서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되나?' 하는 의구심이 고개를 쳐드는 건 왜일까. 이 책에는 '나이 드는 것에 대한 속 시원한 해답이나 교훈, 하다못해 작은 힌트'조차 없지만,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공감이 되고 위로가 된다. 


나이 마흔하나에 적당한 자산이란 어느 정도일까? 

나이 마흔하나에 내 스스로 든 적금이 하나도 없으면 비정상인 걸까? 

나이 마흔하나에 몇 년 째 건강검진을 받지 않고 있는데 괜찮은 걸까? 

나이 마흔하나에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가 가당키나 한 걸까? 

나이 마흔하나에 삼십 대에 입던 스타일로 입어도 되는 걸까? 

나이 마흔하나에 일주일에 서너 번 술을 마시는 건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일일까? (125쪽) 


짠한 여운을 남기는 대목도 있다. 친구들보다 심지어 가족보다 <막돼먹은 영애 씨>팀 작가들과 더 가깝게 지내던 어느 날, 저자는 막내 아이디어 작가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작가가 몽땅 결혼을 해 버리는 초유의 사태에 봉착했다. 


임신, 출산, 시집살이, 부동산, 교육 문제 등등 유부녀들이 깊이 공감할만한 대화에 끼어들지 못하고 '왕따'가 된 듯한 기분을 느낀 저자는 레즈비언 친구에게 하소연을 늘어놓다가 자신의 무신경함을 깨달았다. 결혼하지 않은 자신보다 결혼할 권리조차 무시된 레즈비언이 사회에서 더 깊은 절망감과 소외를 맛본다는 것을 안 것이다. 급기야 레즈비언 친구가 10년 동안 사귄 애인 이름조차 까먹은 저자를 비난하며 친구 왈, "세상이 널 왕따시킨다고 생각하지 말고 네가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 관심 좀 가져 봐라! 이 세상을 왕따시킨 년아!" 


결혼을 해야 한다, 안 해도 된다 하는 생각은 사회적, 법적 제한 없이 결혼을 할 수 있는 사람들만의 논쟁이 아닐까. 몇 살엔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생활이 안정되고 장래를 계획할 수 있는 형편인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배부른 소리가 아닐까. 다큐라기보다 시트콤 같은 이야기가 예상외의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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