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 기자 정의 사제 - 함세웅 주진우의 '속 시원한 현대사'
함세웅.주진우 지음 / 시사IN북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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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 귀는 이어폰과 떨어져 있지를 못한다. 출퇴근할 때, 이동할 때, 밥 먹을 때, 집안일을 할 때 등등 시도 때도 없이 팟캐스트를 듣기 때문이다. 하루에 두세 편씩 들으니 청력은 약해질지 몰라도, 팟캐스트 덕분에 안 듣던 뉴스도 듣고 정치와 역사 공부도 할 수 있어 당분간 그만 둘 생각은 없다. 


<악마 기자 정의 사제>도 팟캐스트를 통해 알게 되었다. '김용민 브리핑'의 지난 방송 목록을 보다가 '악마 기자 정의사제 북 콘서트' 편이 있길래 뭘까 하고 들어봤더니 무려 방송인 김제동 씨가 북 콘서트 시작 전 바람잡이로 나오고 나꼼수 멤버 전원이 출연했다. 게스트도 빵빵하지만 북 콘서트의 주인공인 시사IN 주진우 기자와 함세웅 신부의 이야기가 워낙 좋아서 책을 꼭 읽어보고 싶었다. 청와대, 검찰, 국정원, 조폭, 삼성 등에 관해 독보적인 탐사보도를 하고 있는 '악마 기자' 주진우와 종교인임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에 투신하여 한국 현대사의 중심에 있어온 '정의 사제' 함세웅 신부의 만남을 왜 이제야 알았을까 싶었다. 


최후의 심판에서 구원받느냐, 구원받지 못하느냐를 가르는 관건은 억울한 사람, 약한 사람, 굶주린 사람에게 무엇을 해주었는가 또는 무엇을 해주지 않았는가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핵심입니다. (함세웅, 68쪽) 


이 책은 주진우 기자와 함세웅 신부가 서울, 부산, 대구, 대전, 광주를 돌며 진행한 '속 시원한 현대사 콘서트' 강연을 엮은 것이다. 주진우 기자의 활약은 방송이나 신문을 통해 여러 번 접한 바 있으나 함세웅 신부의 민주화 운동 이력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함세웅 신부는 1974년 초 지학순 주교 등 각계 인사들이 민주화 운동을 벌이다 대거 구속된 사건을 계기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창립하고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으며, 박정희와 전두환 군부독재 치하에서 두 차례 옥고를 치렀다. 


나는 무교이고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어야 한다고 믿어서 종교인이 정치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다. 하지만 함세웅 신부의 말에 따르면 '최후의 심판에서 구원받느냐, 구원받지 못하느냐를 가르는 관건은 억울한 사람, 약한 사람, 굶주린 사람에게 무엇을 해주었는가 또는 무엇을 해주지 않았는가'이며,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핵심이다. 


권력자를 비판하고 정의를 부르짖었다는 이유로 탄압받고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을 보고도 못 본 척하고 심지어는 배격한다면 그때부터 그 종교는 참된 종교가 아니며, 그 종교인은 참된 종교인이 아니다.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부당한 권력과 싸우면서 종교계 내부와 외부에서 모진 핍박과 냉대를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소신을 지켜온 함세웅 신부 같은 분 덕분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음을 새삼 생각한다. 


제가 늘 하는 얘기가 있어요. 2050년의 일기를 써보라고요. 2050년에 일기를 쓴다면 "2015년 역사 교과서를 불법으로 바로잡겠다던 박근혜 그 여인은 참 나쁜 여인이었습니다" 이렇게 한 줄로 요약되는 게 역사예요(청중 환호와 박수). 이런 시각으로 우리가 접근해야죠. 역사는 항상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항상 뜻밖의 사건으로 바뀌게 되어 있어요. (함세웅, 151쪽) 


이 책의 바탕이 된 강연의 제목은 '속 시원한 현대사 콘서트'이지만, 대한민국 현대사는 결코 '속 시원한' 것이 못 된다. 함세웅 신부가 유신 시대부터 몸소 경험하고 주진우 기자가 현재 보도하는 내용만 보아도 즐겁고 행복한 사건보다는 화나고 원통한 것이 더 많다.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시민들에게 함세웅 신부는 '2050년의 일기를 써보라'고 조언한다. 지금 당장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혼란스럽고 어지럽지만, 2050년쯤 되는 미래에는 사건의 결과만이 기록으로 남을 것이고 후대의 정당한 평가를 받을 것이다. 


함세웅 신부는 (강연을 한) 2015년의 역사가 "역사 교과서를 불법으로 바로잡겠다던 박근혜 그 여인은 참 나쁜 여인이었습니다" 쯤으로 요약될 것이라고 했지만, 2016년인 지금 우리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가 어떤 국면을 맞이했고 역사 교과서를 바꾸려고 한 권력이 어떤 처지에 몰려 있는지 알고 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2016년이 훗날 대한민국 역사에 어떤 한 줄로 기록될까. 다가오는 2017년에는 어떤 역사가 새로 쓰일까. 악마 기자와 정의 사제의 활약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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