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랑야방 : 권력의 기록 1 ㅣ 랑야방
하이옌 지음, 전정은 옮김 / 마시멜로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금릉. 대량의 수도. 진귀한 물건이 가득하고 왕의 기운이 넘치는 이곳은, 성문마저 다른 곳과는 달리 유난히 우뚝하고 튼튼했다. 강물처럼 끊임없이 흘러드는 사람들 틈에 푸른 덮개를 씌운 쌍두마차 하나가 눈에 띄지 않게 끼어 있었다. 마차가 한들거리며 느릿느릿 나아가다가 성문에서 몇 장(丈) 떨어진 곳에서 멈췄다. 가리개가 걷히고, 새하얀 옷을 입은 깔끔한 생김새의 젊은이가 내렸다. 그는 몇 걸음 앞으로 나아가 고개를 들고 성문 위의 '금릉'이라는 글자를 바라보았다. (p.11)
올해 상반기에 나는 중국 드라마 <랑야방>에 푹 빠져 있었다. 전에도 중국 드라마를 본 적이 있지만 <랑야방>은 차원이 달랐다. 총 54부에 걸쳐 '떡밥'을 하나씩 하나씩 전부 다 수거하는 짜임새 있는 줄거리는 미국 드라마의 그것을 연상케 했고, 절제된 듯하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자연스러운 연출은 일본의 시대극을 보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중국 사극 특유의 철저한 고증과 화려한 복식을 보는 즐거움은 극대화되어 동서양 드라마의 장점을 모두 합친 듯했다. 삼십 년 넘게 살면서 본 드라마 중에 가히 최고라고 부를 만했다.
<랑야방>은 드라마 <랑야방>의 원작 소설이다. 2011년 중국 온라인 소설 연재 사이트에서 큰 인기를 끈 뒤 책으로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2015년 중국에서 동명의 드라마가 제작, 방송되어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드라마 <랑야방>은 국내에도 수입되어 중화TV 개국 이래 최고의 시청률을 갱신하며 '중국드라마 열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배경은 가상의 나라인 양나라. 주인공 매장소는 무술의 고수들을 여럿 거느린 강호의 종주이자 "그를 얻는 자, 천하를 얻을 것이다!"라는 말이 나돌 만큼 지략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한 랑야방의 서열 1위다. 그런 매장소의 목표는 단 하나. 죽마고우이자 양나라의 황자인 정왕을 황위에 등극시키는 것이다. 마침 양나라의 황위를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는 태자와 예왕이 매장소를 자신의 책사로 모시려고 경쟁하는 틈을 타 매장소는 양나라의 수도 금릉에 입성하고 정왕의 곁에 다가간다. 과연 그는 무슨 이유로 정왕을 황제로 만들려고 하는 것일까.
매장소는 사실 12년 전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소년장수 '임수'의 다른 이름이다. 12년 전 간신들의 음모로 인해 임수의 아버지 임섭이 이끄는 적염군 7만 대군이 몰살당하는 일이 벌어졌는데 이때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가 임수였다. 임수는 얼굴과 신분을 바꾼 채 강호에서 실력을 다지며 복수를 준비했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무르익자 임수는 역적의 아들이 아닌 '기린재자' 매장소로서 금릉에 입성하여 킹메이커 노릇을 한다. 그런데 그가 택한 사람은 황제의 총애를 받는 태자도 아니요 황제를 쏙 빼닮았다고 칭송받는 예왕도 아닌 일곱째 황자 정왕. 성격이 무뚝뚝해 황제가 미워하는 데다가 적염군 사건과 관련이 있어 황위와는 거리가 먼 정왕을 황제로 만들기 위해 매장소는 자신의 진짜 정체마저 숨긴 채 그를 돕는다. 죽마고우에게 권모술수밖에 모르는 책사로 오해를 받으면서도 그를 도와야 하는 마음이 얼마나 안타깝고 절절할까. 그러나 그 마음을 충분히 느낄 여유도 없이, 매장소가 장장 12년에 걸쳐 준비한 복수극은 숨 가쁘게 진행된다.
흔히 원작 뛰어넘는 리메이크작 없고 소설 뛰어넘는 영화나 드라마 없다고 하지만 이 작품은 다르다. 드라마 <랑야방>의 아우라가 워낙 강해서 이 작품만큼은 드라마를 먼저 보고 소설을 읽길 권한다. 드라마 <랑야방>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치밀한 플롯과 뛰어난 연출, 복식의 대비를 소설로 느끼기에는 아무래도 역부족이다. 그 대신 드라마 <랑야방>을 보고 나서 소설을 읽으면 드라마와는 또 다른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드라마에 나오지 않은 세부적인 설정이라든가 배우들의 연기로는 충분히 표현되지 않은 감정이나 생각이 소설에는 잘 나와 있다. 12년 만에 금릉에 입성한 매장소가 느끼는 회한이라든가 소경예, 언예진 등 가까운 사람들을 자신의 복수극에 끌어들여야 하는 안타까움 등이 작가의 문장으로 자세히 서술된다. 매장소와 그의 호위 무사 비류의 관계는 드라마보다 소설에서 훨씬 애틋하다. 애틋하기로는 매장소와 정왕의 관계가 더한데 비중상 1권보다 2,3권에 더 자세히 그려질 듯하다.
드라마 <랑야방>을 세 번 정주행한 다음 <위장자>, <후궁견환전>, <소년 양가장>, <타래료 청폐안> 등 몇 편의 중국 드라마를 이어서 보고 나서 한동안 중국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식었는데 소설 <랑야방>을 읽으니 드라마 <랑야방>을 한 번 더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아마 소설 <랑야방 2>, <랑야방 3>을 읽고 나서도 이런 마음이 들지 않을까. 그만큼 매력적인 작품이고 중독성이 강한 줄거리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드라마다. 드라마 <랑야방>의 감동을 새롭게 발견하고 싶은 독자에게 소설 <랑야방>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