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완벽에 대한 반론 - 생명공학 시대, 인간의 욕망과 생명윤리
마이클 샌델 지음, 김선욱.이수경 옮김 / 와이즈베리 / 2016년 6월
평점 :
몇 년 전 한 커플이 아이를 갖기로 결정했다. 단, 소리를 듣지 못하는 아이를 원했다. 레즈비언 커플인 샤론 듀세스노와 캔디 매컬로는 청각장애인이었고, 그런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청각장애인 공동체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듣지 못하는 것을 치료해야 할 장애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정체성이라고 생각했다. 듀셰스노는 "듣지 못하는 것은 그저 삶의 방식일 뿐이다. 우리는 소리를 듣지 못하지만 스스로 온전하다고 느끼며, 청각장애인 공동체의 훌륭한 소속감과 유대감을 아이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다. 우리는 귀가 들리지 않아도 진정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p.15)
몇 년 전 미국의 청각장애인 레즈비언 커플이 자신들처럼 귀가 들리지 않는 아이를 가지길 원했다. 이들은 5대째 청각장애를 갖고 있는 가족 출신인 정자 기증자를 찾아내 결국 청각장애인인 아들을 얻었다. 이들의 이야기가 신문에 소개된 후 미국 각지에서 비난이 쏟아졌다. 사람들은 이들이 자식에게 고의로 장애를 유발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하지만 이들은 항변했다. "우리는 우리 행동이 이성애자 커플들이 아이를 가질 때 하는 행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이성애자 커플들이 아이를 가질 때 하는 행동을 보자. 이들은 배우자를 택할 때 본능적으로 앞으로 태어날 2세를 염두에 둔다. 몸이 건강한지, 외모가 준수한지, 키가 큰지, 학벌이 높은지, 재산은 많은지 따지는 것은 부모가 원하는 특성을 가진 아이를 낳을 확률을 높이기 위한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이들은 아이가 태어난 후에도 아이의 키를 인위적으로 늘리거나 지능을 높이기 위해 교육기관의 도움을 받거나 성형수술을 받게 하기도 한다. 이는 방법만 다를 뿐 부모가 자식의 인생을 대신 결정한다는 점에서 청각장애인 레즈비언 커플의 선택과 다르지 않다.
이 이야기는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의 책 <완벽에 대한 반론>의 첫 장에 나온다. 2010년에 출간된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를 새롭게 번역, 감수한 이 책에서 저자는 인류의 생활을 풍요롭게 해줄 것이라고 여겨지는 생명공학 기술이 도덕적으로도 타당한지 의문을 제기한다. 평범한 운동선수가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운동선수를 이기기 위해 근육강화제 주사를 맞는 것은 왜 나쁜가, 정신과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을 치료하기 위해 기억력을 약화하는 약물을 사용하는 건 되는데 학력을 높이기 위해 기억력을 강화하는 약물을 사용하는 건 왜 안 될까, 키 큰 아이를 낳기 위해 키가 큰 배우자를 선택하는 건 아무 문제없는데 아이의 키를 인위적으로 늘리는 치료를 받는 건 왜 비난을 받을까 등등 생명공학 관련 이슈는 다양하다.
우리가 던져야 할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자녀가 이미 충분히 건강한데도 그 자녀의 키를 몇 센티미터 더 늘리기 위해 거금을 써야 한다고 느끼는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
저자는 생명공학을 둘러싼 이슈들 대부분이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성과주의'의 폐해를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운동선수가 근육강화제 주사를 맞아가면서까지 경기에 임하는 건 스포츠가 승자만을 기억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학생과 학부모가 기억력을 강화하는 약물을 복용하면서까지 공부에 집착하는 건 이 사회에 학벌에 의한 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식의 키를 몇 센티미터라도 늘리기 위해 그야말로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는 것 역시 외모 차별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차별이 없다면, 모든 사람의 개성이 있는 그대로 존중된다면 그 누가 생명공학 기술에 의존할 마음을 먹겠는가. 저자의 지적이 날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