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공존 - 숭배에서 학살까지, 역사를 움직인 여덟 동물
브라이언 페이건 지음, 김정은 옮김 / 반니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나는 동물과 친하지 않다. 집에서 반려동물을 키운 적도 없고, 하다못해 어릴 적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를 사서 길러본 적도 없다. 동물원이나 수족관에 가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원래 있어야 하는 곳에서 떨어져 나온 동물들이 좁은 공간에 갇혀 사람들의 눈길 세례를 받는 게 불쌍하다. 그렇다고 대단한 동물 애호가인가 하면 그건 아니라서 고기는 먹는다(그것도 아주 잘). 


동물을 가지고 놀고, 보고 즐기는 존재로는 보지 않아도 먹는 존재로는 보는 내 시선이 모순적이라는 걸 깨달은 건 <위대한 공존> 덕분이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선사학 분야의 권위자 브라이언 페이건이 쓴 을 이 책은 인류와 동행하며 역사에 크게 기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여덟 동물에 대해 신화와 역사,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설명한다.


인간은 다른 종을 억압하고 길들여서 인간의 역사 형성에 이바지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당연히 동물들은 자신들이 받는 처우에 반발할 수도 없고, 사람처럼 투표를 할 수도 없다. 이는 인간에게 책임감을 안겨준다. 동시에 도덕성과 무자비한 착취, 이타주의와 이기심이 대립하는 고통스러운 딜레마에 빠지게 한다. 이 딜레마에서 우리는 도덕적으로 변명의 여지가 없는 길을 향해 계속 나아가야 할까? (p.374)


나는 이제껏 인류의 역사가 호랑이나 사자, 늑대 같은 맹수를 정복하면서 발전한 것이라고 믿었다. 이 책에 따르면 인류가 동물을 정복한 것은 맞지만, 모든 동물이 맹수이고 정복해야 할 적이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동물은 인류와 생태계를 함께 구성하는 '동료'였다. 사냥은 '폭력적인 정복 행위'가 아니라 '사냥감이 자신의 죽음을 기꺼이 허락함으로써 사냥꾼과 사냥감 사이의 우호관계가 증명되는 것이었다'. 사냥을 하면 사냥감에 대해 예우를 갖추며 최대한 공평하고 정당하게 배분하려고 애썼다. 그것이 자연의 순리이기 때문이다.


인간과 동물이 대등한 관계에서 인간이 일방적으로 우세한 관계로 바뀐 건 농업혁명 때문이다. 수렵과 채집을 하고 이동하며 살던 인류가 농사를 짓고 정착해 살기 시작하면서 사냥의 필요성이 줄어들었고, 같이 사냥하던 늑대는 집에서 키우는 개로 진화했다. 돼지, 염소, 양 등 발이 느려 쉽게 길들일 수 있고 빠르게 번식하는 동물은 가축화되었다. 소, 당나귀, 말, 낙타 등은 땅이 이어진 곳이라면 어디든 인간을 나름으로써 전쟁과 무역을 가능케 하고 세계화를 촉진했다. 


책의 후반부에 이르면 인류가 엎드려 절해도 모자랄 동물들의 '은혜'를 인간이 어떻게 배신했는지에 관해 자세히 나온다. 말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에게 철저한 복종과 착취를 강요당한 동물들이 너무 불쌍해 책을 제대로 읽기가 힘들었다. 


인간은 왜 이렇게 나쁠까. 피부색이 다르고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같은 인간끼리 차별하고 착취하는 것도 모자라, 말 못하는 동물은 생명이 없는 존재인 양 다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기를 먹지 않을 수 없고, 동물보다 인간의 권리가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마는 나의 모순된 마음이 싫다. 인류가 더 이상 '위대하지도' 않고 동물과 '공존하지도' 않게 된 건 나 같은 사람 때문이 아닐까.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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