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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밴드왜건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4
쇼지 유키야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최근 몇 년 동안 자기 전에 10분이라도 독서하는 습관을 지켜왔다. 이십 대에 몇 년 동안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리고부터 가지게 된 습관인데, 처음엔 잠을 청하기 위해서 했던 독서가 지금은 삶을 바꾸고 생활을 버티게 해주는 원동력이 될 줄은 몰랐다. 요사이에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고되고 지친 일이 많아서 일부러 가벼운 소설이나 에세이를 주로 읽고 있다. 어제까지 지난 며칠 밤을 함께 한 책은 일본 작가 쇼지 유키야의 <도쿄밴드왜건>이다.
이 책은 일본의 인기 아이돌 카메나시 카즈야가 출연한 드라마를 통해 존재를 알게 되었는데, 드라마는 봐야지 봐야지 하다가 아직까지 (무려 3년을...) 못 보고 책으로 먼저 만났다. 이야기의 배경은 무려 90여 년 동안 대를 이어 영업 중인 도쿄 변두리의 헌책방 '도쿄밴드왜건'. 여든을 코앞에 둔 칸이치 영감, 칸이치 영감의 아들이자 전설의 로커인 예순 살 가나토, 가나토의 딸 아키코와 큰 아들 콘 부부와, 작은 아들 아오, 아키코의 딸 카요와 콘의 아들 켄토로 이어지는 4대 일가족의 복작복작한 생활을 그린다.
전형적인 가족 코미디이지만, '문화와 문명에 관한 이런저런 문제라면 어떠한 일이든 만사 해결'이라는 가훈 아래 가족 주위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해결한다는 점에서 미스터리의 성격을 띠기도 한다. 헌책방과 미스터리의 만남이라니. <비블리오 고서당 사건수첩>도 생각난다. (그러고보면 최근 몇 년 사이에 헌책방이 배경인 일본소설을 여러 권 보았고 읽었다. 아마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도 헌책방이 배경이었지...)
특이하게도 이 소설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관찰자 겸 내레이터가 죽은 칸이치 영감의 아내 사치다. 소설에 죽은 사람이 관찰자나 내레이터로 나오는 경우가 흔한지 드문지는 모르지만, 이 소설의 경우 생활 속에서 조상을 섬기고 보살피는 일본 특유의 문화와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가족 중 누군가가 불단에서 죽은 사치 할머니와 대화를 나눌 수 있고, 그 대화 속에서 문제 해결의 단서를 발견하는 것처럼. 일반적인 소설이라면 비현실적인 설정이다, 판타지적인 요소가 있다 라고 일축해버렸겠지만, 이 소설은 배경이 일본이라서인지 전혀 어색하거나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세계적인 대도시 도쿄에, 90여 년째 건물을 수리하지 않고 영업 중인 헌책방이 있고, 1인 가족이 보편화되는 이 시대에(그것도 일본에서) 4대나 되는 가족이 모여 산다는 설정부터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고 판타지적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심지어는 소설 마지막에 우리나라 막장 드라마를 연상케하는 뜨악한(!) 설정도 나오는데 이 또한 억지스럽지 않게 느껴졌을 정도다. 아무래도 내가 요 며칠 <도쿄밴드왜건>의 세계 속에 너무 푹 빠져 있었던 것일까? 속편 <쉬 러브스 유>도 읽고 싶은 걸 보면 재미는 있었던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