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독 그 사람이 힘들다
배르벨 바르데츠키 지음, 김세나 옮김 / 와이즈베리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연말이 되니 이런저런 모임이 참 많다. 직장에선 송년회를 하고, 일 년 동안 못 본 학교 동창들도 만나야 하고, 가족 모임이며 각종 경조사까지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줄줄이 이어진다. 이런 모임에 나갈 때마다 반가운 얼굴들을 봐서 좋지만, 이따금 싫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애인 없는 거 뻔히 알면서 애인 있느냐, 왜 없느냐, 무슨 문제 있느냐, 며 꼬치꼬치 캐묻는 선배, 묻지도 않은 연봉 얘길 늘어놓으며 잘 나간다는 걸 과시하는 친구, 좋은 자리 나와서 굳이 남의 험담을 해서 분위기를 흐리는 후배 등등 듣는 사람 기분이며 분위기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에게 넌더리가 난다. 


  남이야 그 말을 듣고 어떤 기분을 느끼든 말든 아무 말이나 내뱉는 '그 사람'. 혹시 지독한 나르시시스트는 아닐까? 독일의 심리학자 배르벨 바르데츠키의 저서 <나는 유독 그 사람이 힘들다>에 따르면 인간관계의 고통은 대개 자기애, 즉 나르시시즘(narcissism)에서 비롯된다. 저자는 "나르시시즘은 우리 내면의 두려움과 불안감에 대한 방어기제로, 마음의 상처와 가치 상실감에 대한 보호가치로 기능"한다고 설명하면서, 오늘날엔 나르시시즘이 몇몇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특수한 병리적 현상이 아니라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다고 말한다.


  나르시시즘의 핵심 주제는 인격적인 가치 또는 무가치, 그리고 그 가치를 유지하거나 높이기 위한 온갖 노력에 있다. 나르시스적인 사람들은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고 느끼기 위해 언제나 최고가 되려고 한다. 이들은 자기 자신과 사랑에 빠진 것처럼 행동하지만, 이것은 자신에 대한 마음속 회의감을 감추려는 기만적인 행위일 뿐이다. 자기 자신을 정말로 사랑하고 높이 평가하는 사람은 자신을 추켜세운다거나, 자기가 얼마나 멋진지 다른 사람들에게 애써 보여주려고 하지 않는다.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은 나르시스적인 부족함이 있는 것으로, 그것을 최적화된 자기 과시를 통해 상쇄하려고 드는 것에 불과하다. (p.16)


  적절한 자기애는 자존감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과도한 자기애는 자기 내면의 진실한 모습을 직시하지 못하게 만들 뿐 아니라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중시하는 사고방식으로 인해 타인을 착취할 가능성이 높다. 애인 없는 내 속을 후벼팠던 그 선배, 자기 잘난 척, 남의 험담을 하느라 분위기 흐리는 건 눈치도 못 챘던 그 친구, 그 후배는 어쩌면 지독한 나르시시스트였는지도 모른다. 헌데 그들뿐일까. 하루가 멀다 하고 SNS에 '뽀샵' 처리를 하도 심하게 해서 눈코입이 잘 보이지도 않는 셀카를 올리거나, 남들 다 일하는 시간에 굳이 명품 쇼핑하고 먹방 순례한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의 심리는 나르시시즘과 결코 멀지 않다. 어쩌면 매달 책 몇 권 읽었다, 어디서 무슨 상을 받았다며 자랑하는 나도. 


  나르시시스트를 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타인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신의 발전을 위한 도전 과제로 여기는 것이다. 상처가 되는 말을 던지는 나르시시스트가 가장 나쁘지만, 그가 한 말에 상처를 받는 나에게도 약간의 책임은 있다. 애인 없는 게 내가 평소 공언하는 대로 그렇게 별일이 아니라면 남이 하는 말에 상처를 입을 필요가 없다. 상처를 받았다는 건 사실 나도 속으로는 서른이 넘도록 애인이 없는 현실을 비관적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ㅠㅠ).   

  

  자기 안의 나르시시즘을 달래는 방법으로는 자기 성찰과 자기 제어가 있다. 분노를 느끼거나 모욕을 받았을 때는 일일이 반응하지 말고 자기만의 감정의 배출구를 찾는 것이 좋다. 나는 분노나 모욕감을 느낄 때 속으로 '이 일이 내 인생에 중요한 일인가?'를 자문해 본다. 남이 한 말에 속이 상하거나 잘못도 안 했는데 욕을 듣는 일은 그날 하루로 치면 큰일이지만 기나긴 인생 전체를 두고 보면 금방 잊힐 사소한 사건에 불과하다. 평소에 나 자신을 충분히 아껴주는 것도 좋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참지 않고 하고, 먹고 싶은 음식은 먹고, 입고 싶은 옷은 입어본다. 별일 아닌 것 때문에 나를 초라하게 느끼고 괴로워하는 것만큼 자존감에 해를 입히는 게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너무 많이 먹고 과소비하는 건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으니 주의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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