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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사와 리쿠 - 상
호시 요리코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5년 10월
평점 :
품절
호시 요리코의 대표작인 <오늘의 네코무라 씨> 시리즈의 속편이 아무리 기다려도 안 나와서 서운해 하던 차에 <아이사와 리쿠>라는 책이 나왔다. 주인공은 타인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열네 살 소녀 아이사와 리쿠. 요시모토 바나나, 오가와 요코 등 한국에도 잘 알려진 작가들의 호평을 받았으며, 2015년에는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 대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어떤 이야기일까 궁금해 얼른 구입해 읽어보았다.
아이사와 리쿠는 모든 걸 다 갖추었지만 행복하지 않다. 아이사와의 어머니는 딸이 자기 뜻대로 움직여주는 인형이길 바라고, 아이사와의 아버지는 회사에서 젊은 여직원과 불륜을 하고 있다. 공부는 부모가 원하니까 할 뿐이고, 친구는 없으면 불편하니까 사귈 뿐이지 진짜 마음이 통해서 사귄 적은 없다. 그런 아이사와의 남들 앞에서 울기다. 정작 진짜 슬플 때 눈물을 흘린 적은 없다. 아니, 슬픔이란 감정이 뭔지도 모른다. 그런 아이사와가 어느 날 갑자기 간사이 지방에 있는 친척집에 보내진다. 간사이 지방 하면 일본에서도 사람들이 솔직하고 재미있기로 유명하다. 부모와도 속마음을 털어놓고 지내지 않았던 아이사와는 누가 들으면 싸운다고 여길 듯한 목소리로 필사적으로 떠들고 남을 웃기려드는 사람들에게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한다. 언제쯤 아이사와가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까. 페이지가 계속 넘어갔다.
<아이사와 리쿠>는 <오늘의 네코무라 씨>와 닮은 점이 많다.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것은 남들이 보기엔 부러울 게 없을 것 같은 여자애.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는 삐걱댄 지 오래고, 부모는 자식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뭐든 돈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잘하는 건 많지만 진심으로 하고 싶은 건 없고, 친구도 원해서 사귄 적은 없다. 그런 여자애의 곁엔 네코무라 씨와 도키오라는, 귀엽고 순진무구한 존재가 있다. 여자애가 잃어버린 동심, 여자애가 원하는 부모의 사랑, 가족의 정을 알게 해주는 존재다. 연필로 대충 그린 듯한 호시 요리코의 만화가 웬만한 3D, 4D 영화보다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유다.
다만 일본 사람들의 정서, 특히 일본의 간토 지방과 간사이 지방 사람들의 문화 차이, 간사이 지방의 문화와 정서를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더러 있다. 책에서는 간사이 사투리를 경상도 사투리로 번역했는데, 그렇다고 간사이 지방의 문화와 경상도의 문화가 비슷한 건 아니다. 남자들만 봐도, 경상도 남자들은 무뚝뚝하고 말이 없기로 유명하지만 간사이, 특히 오사카 남자들은 재미있고 말 잘하는 사람이 많다. 간사이 지방 사람들처럼 잘 웃고 실컷 떠들고 싶었던 아이사와의 마음이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잘 전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