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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까칠하게 말할 것 - 착한사람들을 위한 처방전
후쿠다 가즈야 지음, 박현미 옮김 / MY(흐름출판) / 2015년 9월
평점 :
일주일 전 화장품 가게에서 겪은 일이다. 한 여성이 매장 앞에 진열된 화장품 샘플을 보고 있자 점원이 매장 안쪽에 제품이 있으니 들어와서 구경하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여성이 매장 안으로 들어와 샘플 하나를 집어들고 제품을 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 점원은 해당 제품이 품절이라서 줄 수 없다고 했다. 여성은 제품이 있다고 해서 들어왔는데 없다고 하니 황당하다며 화를 내고 나갔다. 그 점원은 회사에서 알려준 매뉴얼에 적힌 문장을 말했을 뿐이라며 동료에게 억울함을 호소했다. 사실과 다른 데도 매뉴얼대로만 말한 점원과, 매뉴얼대로 말해야 하는 입장을 배려하지 않고 화를 낸 여성. 둘 중 누가 잘못일까?
게이오대 교수 후쿠다 가즈야의 책 <가끔은 까칠하게 말할 것>을 읽고 배운 내용을 적용하면, 둘 다 잘못이다. 말을 부드럽게, 선하게 하지 않은 것이 잘못이 아니다. 저자는 '선의란 자기 긍정을 위한 알리바이'. '남에게 상처 주거나 배신하고도 가장 태연한 사람들이 착한 사람인 경우도 많다'며 선을 무조건적으로 예찬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선을 작용하건 악을 작용하건' 의식적인 자세를 높게 산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의식하면서 듣고,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의식하면서 말하는 사람은 말이 잘 통하고 대화의 결과도 좋다. 제품이 없는데도 없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으면서 말한 점원이나, 매뉴얼에 따라야 하는 을의 처지에 놓인 점원의 상황을 배려하지 않고 화를 내 결과적으로 매장 분위기를 흐리고 나간 여성은 둘 다 대화에서 실패한 셈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예의 바르게 행동하라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이제 어른이 된 우리는 상대가 기계적인 미소와 90도로 숙인 인사를 보여줬다고 해서 그가 나를 존중한다고 생각할 만큼 단순한 세상에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말은 진실되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만, 그 말이 곧 모든 진실을 다 말해야 한다는 것과 같은 뜻은 아닙니다. (pp.9-10)
저자는 의도가 선하든 악하든, 내용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간에 통하는 대화를 하라고 한다. 통하기만 한다면 아부와 험담, 비판도 괜찮다. 아부는 싫어하는 사람을 무방비 상태로 만들어 약점을 노출하게 할 수 있는 무기이며, 험담은 '남에게 잘 의지하면서도 경계심이 강하고, 자신이 먼저 불을 지피지도 못하는 주제에 험담을 듣고 싶어서 근질거리는 인간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미끼가 된다. 우스운 별명을 붙이거나 은근한 비판으로 상대의 속을 뒤집는 것은 약자가 강자에게, 을이 갑에게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저항의 수단이기도 하다. 비판은 잘만 하면 자신을 드러내고 능력을 어필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한번은 파티에서 여성 편집자를 소개받은 적이 있는데, 마주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선생님의 평론은 인용이 무척 재미있어요."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실을 실례가 되면서도 신랄한 말입니다. 본문이 재미없다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지만 글을 쓴 입장에서는 그 편집자의 말이 옳았습니다. 더욱이 첫 만남에서 거침없는 지적을 하는 사람에게 흥미라고 해야 할지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자리는 가볍게 마무리 지었지만 결국 그 편집자와 함께 작업하여 책을 내고 좋은 성과도 올려서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p.157)
'접객 매뉴얼'에 대한 내용도 있다. 저자는 손님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만든 접객 매뉴얼이 오히려 손님을 기쁘지 않게 한다고 지적한다. 기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점원이 나에게 웃는 것이 아니라 '단지 웃으라고 돼 있어서 웃을 뿐'이기 때문이다. 화장품 가게 점원이 여성을 매장 안으로 불러들인 것도 여성이 찾는 제품이 매장 안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매뉴얼에 그렇게 하라고 써있기 때문이었다(생각해보니 여성이 찾는 제품이 뭔지 보기나 했는지 의심스럽다). 혹시 그 여성은 제품이 없으면서도 있다는 말을 해 자신을 매장 안쪽으로 가게 만든 것에 화를 낸 게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매뉴얼에 적힌 말을 되풀이하는 무신경한 모습에 화를 낸 것일까? 그런 것이라면 그 때 그 여성의 까칠한 태도가 조금은 이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