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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 & 겐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3
미우라 시온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5년 7월
평점 :
오랜만에 유쾌하고도 감동적인 일본 소설을 읽었다. 저자는 미우라 시온. 미우라 시온 하면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이나 <배를 엮다> 같은 느린 템포의 소설도 좋고, 최근작 <천국 여행> 같은 기발한 소설도 좋지만, 역시 그를 대표하는 건 <마호로역 다다 심부름집>에서 보여준 두 남자가 주인공인 유쾌상쾌통쾌한 도시 생활물. 신작 <마사&겐>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마사'와 '겐'이라는 두 남자가 주인공이고, 마호로역에서 스미다 구 주변으로 위치를 약간 옮겼을 뿐 같은 도쿄가 배경이라는 점에서 <마호로역 다다 심부름집>과 비슷해 큰 기대를 하고 읽었는데, 기대한 만큼 좋았다.
일본 도쿄의 동부에 있는 스미다구 Y동네 토박이인 마사와 겐은 둘이 합쳐 나이가 146세에 달하는 죽마고우다. 마사는 정년퇴직하기 전까지 은행에서만 일한 은행가, 겐은 어려서부터 일본의 전통 공예 중 하나인 '쓰마미 세공'을 배운 장인. 마사는 부모가 정해준 여자와 결혼해 딸 둘을 키우고 지금은 별거 중, 겐은 야반도주를 감행하면서까지 사랑한 여자와 아이 없이 알콩달콩 살다가 사별한 상태. 이렇게 많은 것들이 다른 두 사람이지만 둘도 없는 친구이자 싸워도 며칠 안 가 화해하고 마는 사이. 그런 두 사람의 유쾌하고 흥겨운 생활을 지켜보고 있자니 마음이 훈훈한 한편, 나도 이런 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두 분이 어렸을 때와 비교하면 Y동네는 변했나요?"
당연히 변했다. 반세기 이상 흘렀으니까. 길도 운하도 정비되고, 동네 풍경도 완전히 바뀌었다. 수많은 집과 사람들이 불타고, 그 폐허 위에 새로 세워진 것이 지금의 Y동네이다. 구니마사가 입을 열려는 순간 겐지로가 싱긋 웃으며 선수를 쳤다.
"안 변했어. 예나 지금이나 한갓지고 좋은 동네지."
구니마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pp.19-20)
소설 첫부분에서 학교 과제를 하러 나온 아이들에게 겐은 Y동네가 예나 지금이나 좋다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왜 애들한테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느냐고 따지는 마사에게 겐은 '내가 약해서'라는 답을 할 뿐이다. 책장이 넘어갈수록 점점 밝혀지는 두 사람의 과거와 속사정은 Y동네의 역사와 비슷하다. 많은 것이 사라지고 없어지고 생기고 만나는 일의 연속이었다. 그 다사다난한 시절을 오로지 '한갓지고 좋은' 추억으로 가슴에 묻는다는 건, 친구인 마사가 떠올리지 못한 것처럼 나 또한 좀처럼 짐작이 안 된다.
서로를 속속들이 잘 아는 듯 모르는 듯, 이해하는 듯 이해하지 못하는 듯 하면서도, 같은 시절을 겪고 어려울 때 곁에 있어주었다는 이유만으로 운명 공동체로 묶인 두 사람, 마사와 겐. 흔히 남자들의 우정을 사나이의 의리나 전우애 같은 것에 비유하는데, 마사와 겐을 보면 의리나 전우애라는 말로 거창하게 포장하지 않아도, 그저 둘이 함께 어울리고 웃고 우는 것만으로도 성립하는 우정이 있는 것 같다. 아,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