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첫 문장 -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세계문학의 명장면
윤성근 지음 / MY(흐름출판)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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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만 해도 책을 읽을 때 줄거리만 보았다. 주인공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일을 겪고, 그로 인해 어떤 결말을 맞이하는 지만 확인하면 되었다. 그것만 알면 책을 다 읽었다고 여겼다. 읽는 책도 죄다 다른 사람의 성공을 다룬 자기계발서나 줄거리 위주의 장르 소설뿐이었다. 지금도 그런 책들을 안 읽는 건 아니지만, 읽기 쉽고 주제나 교훈을 알기 쉬운 책 위주였다. 이제는 다르다. 줄거리의 재미나 주제의 대단함보다도 문장의 결을 중시하게 되었다. 읽는 책도 문학 위주로 바뀌었고, 문장을 잘 쓰기로 유명한 사람들의 저작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잘 읽히는 책, 쉽게 이해되는 책보다 잘 읽히지 않는 책, 곱씹어야지 겨우 이해되는 책이 사랑스러워 보인다.



<내가 사랑한 첫 문장>의 저자이자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의 주인 윤성근은 진작부터 그런 독서를 했지 싶다. 어려서는 셜록 홈즈와 애거서 크리스티 같은 추리소설, 중학교 때는 한국 작가들이 쓴 작품을 주로 읽던 저자는 고등학교 때 처음 프란츠 카프카와 사랑에 빠진 이래 독일어권을 시작으로 러시아를 비롯한 유럽 출신 작가들의 저작을 읽다가 직접 헌책방을 차렸다. 독일문학이라고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은 게 전부이며, 고등학교 때 <죄와 벌>을 읽고 다시는 러시아문학을 읽지 않으리라 결심(그 결심은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철회했으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읽다 포기한 것을 계기로 다시 유효해졌다)한 적도 있는 나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독서 취향. 무엇을, 어떻게 읽길래 내가 쉬이 사랑하지 못한 책들을 인생의 책으로 꼽는지 궁금해 책을 펼쳤다.



첫인상은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에게 중요한 의미였습니다. 특히 독자들에게 자신이 쓴 긴 이야기를 읽게 만들고 싶은 소설가들은 두말할 필요 없이 첫 문장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첫 문장도 시시한데 어느 누가 다음에 이어지는 글에 흥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그러니 독자들은 가볍게 읽는 첫 문장이 소설가들에게는 커다란 짐이 되기도 합니다. (p.6)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이 침대 속에 한 마리의 커다란 해충으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고등학교 때 헌책방에서 운명처럼 카프카의 <변신>을 만난 저자는 이 짧은 소설의 첫 문장을 읽자마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충격을 받았다'. 그로부터 몇 달 동안 <변신>을 읽고 또 읽은 그는 번역문이 아닌 원문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독일어를 독학해 고등학교 졸업 직전에 원서 읽기를 겨우 마쳤다. 이를 계기로 책을 읽을 때 문장 한 줄 한 줄을 곱씹되 때로는 원문을 찾아 읽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게 되었다니, 독서를 향한 저자의 열정이 대단하다.



이제는 저자가 전보다 더 폭넓게 독서를 하는지, 이 책에만 해도 <변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안나 카레니나> 같은 유럽문학 외에, <노인과 바다>, <뉴욕 3부작> 같은 미국문학,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같은 일본문학, <날개>, <죽음의 한 연구> 같은 한국문학 작품이 소개되어 있다. 학창시절에 만난 카프카의 첫 문장을 씨앗으로 자신만의 책의 숲을 이룬 저자가 참 멋지다. 나의 첫 문장, 나의 첫 책은 무엇일까. 나는 과연 어떤 책의 숲을 이루게 될까. 행복한 꿈을 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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