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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인간은 이야기의 포로다. <아들>에 나오는 인물들에게도 아침마다 눈을 뜨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정년을 코앞에 둔 경찰 시몬 케파스는 도박 중독의 수렁으로부터 자신을 구해준 아내 엘세를 실명의 위기로부터 구해야 하는 이야기가 있다. 마약에 빠졌다가 부유층의 혐의를 뒤집어쓰고 십이 년째 대신 복역 중인 소니에겐 가족을 지키기 위해 부패 경찰의 오명을 쓰고 자살한 아버지를 위해 복수해야 하는 이야기가 있다. 소니와 사랑에 빠진 마르타에게는 그녀가 일하는 마약 중독자들의 쉼터 '일라 센터'가 아직 미혼모를 위한 시설이었던 시절, 레지스탕스인지 독일군 첩자인지 모를 남자의 아이를 낳고 자살한 여자의 이야기가 있다. 소니가 어릴 적에 살던 집 건너편에 사는 소년 마르쿠스에게는 얼굴도 본 적 없는, 그래서 늘 혼자서 상상할 뿐인 아버지의 이야기가 있다.
"아들의 의무는 아버지처럼 되는 게 아니라 아버지를 뛰어넘는 거니까."
소설의 중심은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전승되는 이야기이다. 아버지를 영웅으로 섬기다 못해 닮으려 애쓰다 문득 아버지의 실패며 비겁이며 추함을 깨닫고 자신도 그처럼 늙어갈 것을 두려워하게 되는 아들의 이야기는 어느 나라, 문화권에나 존재한다. <아들>의 '아들' 소니가 그렇다. 밖에선 강인한 경찰이고, 집에선 선량한 가장이었으며, 자신의 모든 장점과 재능을 아들이 닮기를 원했던 아버지를, 아들은 성실하게 사랑했고 어리석게 믿었다. 아버지의 부재를 못 이기고 마약에 빠진 아들은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죄수들에게 신처럼 받들어지다가 그들의 복수를 대신하는 존재가 된다. 대신하는 존재. 인간의 죄를 대신 사함 받기 위해 죽었다가 부활한 예수를 작가는 염두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미쳤다. 그를 처음 본 순간부터 그랬다. 하지만 이 노란 집에 들어와 부엌 싱크대에 있던 아그네테 이베르센의 귀걸이를 발견하고 귀에 건 후에야 그녀는 비로소 깨달았다. 자신도 소니 로프투스 못지않게 미쳤다는 것을. (p.530)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전승되는 이야기 못지않은 것이 사랑 때문에 고통받는 여자들의 이야기이다. 옛 이야기에는 자식을 지키기 위해 사랑하는 남자를 버리거나 혹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식을 버리는 비정한 여인들의 이야기가 흔하다. 사랑하는 남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목 매달아 죽은 여자가 낳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의 울음소리가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들린다는 이야기를 믿지 않는 마르타는, 얼마 후 자신 또한 사랑해선 안 될 남자와 사랑에 빠져 목숨을 건 선택을 하는 처지에 놓인다는 사실을 꿈에도 상상 못한다. 자신의 눈 수술을 위해 경찰 인생 마지막을 걸고 '도박'을 하는 남편 시몬을 지켜보는 엘세, 형제처럼 붙어다니던 세 친구를 갈라놓고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다 죽게 되는 헬레네 또한 자신들의 인생이 사랑 때문에 흔들리거나 망가질 줄은 몰랐을 터.
인물 한 명 한 명의의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처럼 촘촘히 엮인 이 소설의 다음을 기대하건만, 그래서 시몬 케파스가 해리 홀레처럼 시리즈 전체에 걸쳐 그가 가진 어둠이 한 겹 한 겹 벗겨지는 인물이길 바랐건만, 아쉽게도 그의 어둠은 <아들>에서 모두 밝혀지고 만다. 시몬의 어둠을 끝까지 지켜본 후배 경찰 카리가 그의 이야기를 계승해주면 좋을 텐데. <아들>이 해리 홀레와는 또 다른 시리즈의 프리퀄이길 바라는 건 욕심일까. 요 네스뵈의 <아들>. 올 여름에 읽은 소설 중 가장 묵직하고 가장 웅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