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작가가 읽은 세계문학 - 나의 읽기, 당신의 읽기
황석영.성석제.김연수.천명관.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서평을 쓰면서 가장 많이 고민하는 것은 부족한 글재주도 아니요, 부박한 내용도 아니라, '나다움'이 묻어나지 않는 것이다. 나는 글쓴이가 어떤 상황에서 혹은 어떤 감정으로 이 책을 만났고, 읽는 동안 어떤 생각의 변화가 있었으며, 읽은 다음은 어떤지 알려주는, 그래서 그가 책 한 권을 온전히 통과했다는 것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서평을 좋아한다. 허나 지금 내가 그런 서평을 쓴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다. 글재주가 미천하고 내용이 부실한 탓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나다움'이 뭔지 모르는 탓이다. 나다움은 뭘까. 나다운 서평은 뭘까. 고민하고 있던 차에 서평집 한 권을 만났다.



<한국 작가가 읽은 세계문학>은 황석영, 성석제, 김영하, 김연수, 박민규, 천명관, 김애란, 황정은 등 오늘날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문학동네 세계문학 전집 중 한 권을 읽고 3,4페이지 내외로 쓴 서평을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에 '한국 작가가 읽어주는 세계문학'이라는 제목으로 2년 여간 연재한 걸 엮은 책이다. 좋아하는 한국 작가가 읽은 세계문학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그가 쓴 서평까지 읽을 수 있으니 책 좋아하고 서평 쓰기가 취미인 사람으로서 마음에 쏙 드는 콘셉트가 아닐 수 없다(게다가 정가 8천8백원이라는 착한 가격!!). 이 나라에서 글 잘 쓰기로 손꼽히는 이들은 대체 어떤 서평을 쓸까. 서둘러 읽어보았다.



맨처음 실린 건 '로쟈'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서평가 이현우 님의 <안나 카레니나> 서평이다. 

"톨스토이는 소설의 두 기둥을 덮어주는 지붕이 작품에 존재한다고 시사했다. 잘 찾아보라고?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자면 이 작품에선 레빈만이 아니라 안나 또한 작가 톨스토이의 분신이다. 곧 레빈이 정신적 자아를 대표한다면, 안나는 육체적 자아를 대표한다. 톨스토이 자신이 레빈처럼 삶의 의미라는 형이상학적 물음에 과도하게 사로잡힌 인물이었고, 안나처럼 강렬한 육체적 욕망의 소유자였다. 문제는 이 두 자아의 통합니다." (pp.18-9) 

<안나 카레니나>를 읽었음에도, 그것도 꽤나 감명 깊게 읽었음에도 톨스토이가 소설의 두 기둥을 덮어주는 지붕이 작품에 존재한다고 시사했는지, 그것이 안나와 레빈이며 각각 육체와 정신의 자아를 대표하는지는 읽어내지 못해 부끄럽다. 로쟈 님의 서평을 읽을 때마다 세상에 읽을 책이 얼마나 많으며 그것들을 다 읽어내기 위해서는 얼마나 깊은 공부가 필요한지 절실히 느낀다. 이 글도 마찬가지다.



소설가 백영옥도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글을 썼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내가 기적처럼 <안나 카레니나>를 완독했다면 말할 것도 없이 나는 이 소설의 주제가 '인과응보'였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바람난 여자가 기차에 치여 죽었으므로 슬프긴 해도 삶은 원래 그래야 하는 것, 이라고 실컷 잘난 척했을 것이다. 그것은 철저히 이솝우화적인 세계로, '교훈'을 찾는 것이 진정한 독서의 의미라고 생각했던 열한 살 내 가치관과도 들어맞았을 것이다. 그러나 서른일곱에 다시 읽는 <안나 카레니나>는 '이렇게 사는 게 나쁘다!'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가?'라는, 선뜻 대답하기 힘든 질문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말할 것도 없이 내가 실패를 거듭하며 이 소설의 첫 장에서 마지막 장까지 읽는 동안 내가 그은 밑줄은 상당 부분 바뀌어 있었다." (pp.23-4) 

백영옥은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려 무던히 노력했으나 등단 직전에야 겨우 완독했다고 고백하는 한편, 일찍 읽었다 한들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으리라고 짐작한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책들은 웬만한 무게의 삶을 겪어내야 비로소 읽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까닭이다. 13년이나 신춘문예에 도전한 끝에 등단한 작가답게 독서에도 때가 있으며 미숙한 채로 깨닫길 열망하지 말라는 메시지로 읽혔다.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작가 김연수의 글도 실렸다(이 책을 구입한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르 클레지오의 <황금 물고기>를 읽고 썼다. 

"자신의 삶을 사랑한다면, 그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다 알아내려고 애쓸 겁니다. 책뿐만 아니에요. 음악도 듣고, 그림도 보고, 춤도 추고, 외국에도 갈 거예요. 가능한 한 모든 걸 맛볼 겁니다. 이 삶에 눈멀고 귀먹고 입다문 사람이라면 그물에 걸린 물고기의 신세나 마찬가지죠. 자유로운 물고기라면 자신의 입과 코와 눈과 귀로 자기 앞의 삶을 맛보고 냄새 맡고 보고 들을 거예요. 그게 바로 황금 물고기죠." (pp.46-7) 

이 글은 서평이라고 해도 될지 알쏭달쏭하다. 그도 그럴 게 "어느 날, 내가 자는 동안 지구가 태양 주위를 무진장 빨리 도는 바람에 하룻밤새 몇천 년이 지나가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으니......"로 시작하는, 서평을 가장한 소설이기 때문이다. 소설가 황석영이 같은 책을 읽고 서평다운 서평을 쓴 데 반해 김연수는 단편 소설이라고 해도 될 만한 글을 썼다. 김연수와 김중혁이 함께 쓴 영화 에세이집 <대책 없이 해피엔딩>에도 영화평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기발한 형식과 내용의 글이 많았던 게 떠올랐다. 아, 이래서 내가 김연수 작가님을 좋아한다니까.



사회학자 정수복은 <적과 흑>을 읽고 이런 글을 썼다. 

"소설과 사회학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그러나 소설이 사람 사는 모습을 이야기로 만들어 구체적으로 묘사한다면, 사회학은 사회적 삶의 모습을 분석하여 이론화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사회학자는 "우리는 어떤 사회에 살고 있으며 그 안에서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애쓴다. 그런데 19세기 말 사회학이라는 신흥 학문이 등장하기 전에는 소설가들이 그런 질문에 답하면서 사회학자 노릇까지 했다." (p.114) 

문학과 사회과학의 만남은 학부 때부터 내가 관심을 둔 주제이고 미숙하게나마 시도해본 적 있는 테마인데, 문학을 사회과학의 프레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문학을 아예 사회과학의 한 형태로 간주하고 사회과학이 정통 학문으로 자리잡기 이전에 사회과학의 역할을 해온 것으로 평가하는 것은 신선하다. 사회과학 전공자로서 문학을 읽을 때마다 이것이 뉴스나 신문으로 접하는 세상사보다 더 현실적이고 생생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닌데, 일찍이 읽은 <적과 흑>을 이렇게 읽어내지 못한 것이 유감이다.



이밖에 김영하, 김애란, 정이현, 황정은 등 좋아하는 작가들의 서평을 마음껏 읽을 수 있고, 라디오 PD 정혜윤, 문학평론가 정여울, 가수 루시드폴 등 좋아하는 작가, 예술가의 글까지 볼 수 있어서 읽는 내내 즐거웠다. 어쩌면 다들 이렇게 자신의 삶과 관심 분야와 스타일이 묻어나는, '나다운' 글을 쓰는지 부럽기도 했다. 그들만큼 많이 읽지도, 쓰지도 않은 내가 부러워하는 마음을 품는 것조차 건방진 일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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