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RC 힐러리 로댐 클린턴
조너선 앨런.에이미 판즈 지음, 이영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대학 시절 공강 시간이면 중앙도서관 시청각자료실에서 미국 드라마 <웨스트 윙>을 보았다. 웨스트 윙은 정치외교학과 전공자인 나에게 미국 정치에 대해 교과서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공직을 경험한 적 없는 내게 대통령과 그 주변 사람들의 생활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정치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해득실을 계산하며 어울리는지를 알려주었다.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볼 만한 드라마다. 


2016년 미국 대선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히는 힐러리 클린턴을 다룬 책 <HRC>를 읽는 내내 웨스트 윙 생각이 났다. 웨스트 윙의 주인공인 제드 바틀렛 대통령과 퍼스트 레이디 애비의 모델이 클린턴 부부라는 설이 있기도 했지만, 이 책을 읽으며 웨스트 윙 생각을 한 건 웨스트 윙에 나오는 바틀렛 부부가 정치적 실패, 건강 악화, 딸 납치, 심지어는 피격 사건 같은 큰일이 발생했을 때에도 좌절하지 않고 재빨리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았던 것처럼 클린턴 부부도 그러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힐러리가 2008년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오바마에게 패배한 후 민주당의 승리를 위해 전력적으로 오바마를 돕는 한편 예비선거에서 자신을 돕지 않은 인물들을 가려내는, 이른바 '살생부' 작업을 하는 장면에서 출발한다. 빌이 아칸소 주지사였던 시절부터 미국 정계에 있었던 힐러리의 주변에는 항상 사람이 많았지만 그 중에는 친구인 척 하는 적도 많았다. 힐러리는 민주당 예비선거를 통해 누가 적인지 똑똑히 깨달았고, 천천히 은밀하게 복수를 감행했다. 반면 자신을 도와준 사람은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힐러리가 바쁠 때는 빌이 대신했다. 2016년 대선을 위한 초석을 이 때부터 다지고 있었던 것이다.


힐러리는 또한 오바마 행정부에서 5년 동안 국무부 장관을 역임하며 외교 활동을 하고 국내 정치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한때 경쟁자였고 자신을 패배시킨 오바마의 밑에서 일한 건 공직자의 소명을 다하고 민주당원으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외교정책 전문가로서의 경력을 쌓는다는 목적도 있었다.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이 힐러리가 국무부 장관직을 수행한 다음에는 재무부 장관이나 세계은행 총재로 자리를 옮겨 경제 분야의 커리어를 만들지 않겠느냐고 짐작한 바 있다. 이유가 무엇이었든 간에 국무부 장관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자신의 입지를 더욱 탄탄히 한 것은 분명하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힐러리 혼자만 노력한 것이 아니라 빌도 함께 했다는 것이다. 빌은 오바마와 꽤 오랫동안 서먹한 사이였지만 결국엔 좋은 사이가 되었다. 물론 정치적 이해관계도 있었다. 빌에게는 힐러리의 정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현직 대통령인 오바마의 도움이 필요했고, 오바마로서는 민주당 내에서 큰 세력을 가지고 있고 여전히 높은 국민적 인기를 자랑하는 클린턴에게 밉보여서 좋을 것이 없었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애매한 입장에도 불구하고 힐러리가 패배를 극복하고 다시 한번 대권에 도전할 수 있도록 돕는 모습을 보며 클린턴 부부의 남다른 팀웍을 알 수 있었다.


대학교 때 자서전 <살아있는 역사>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는데, 이번에 다시 그녀에 관한 책을 읽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 책이 나온 이천 년 대 초만 해도 퍼스트레이디였던 힐러리가 직접 정치인이 되겠다고 나선 게 놀라운 일이었는데, 십여 년이 지난 지금은 그녀가 대권에 도전한다고 해도, 미국의 첫 여성 대통령이 되겠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자리에서든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여성이 고위직에 오를 수 있고 대권에도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인 그녀 자신의 공이 아닐까. HRC. 힐러리 로댐 클린턴. 앞으로 그녀가 어떤 '살아있는 역사'를 쓸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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