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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 김영하의 인사이트 아웃사이트 ㅣ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한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데에서 좀더 나아가야 한다. 보고 들은 후에 그것에 대해 쓰거나 말하고, 그 글과 말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직접 접하지 않고서는, 다시 말해, 경험을 정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타자와 대화하지 않는다면, 보고 들은 것은 곧 허공으로 흩어져버린다. 우리는 정보와 영상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많은 사람이 뭔가를 '본다'고 믿지만 우리가 봤다고 믿는 그 무언가는 홍수에 떠내려오는 장롱 문짝처럼 빠르게 흘러가버리고 우리 정신에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제대로 보기 위해서라도 책상 앞에 앉아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내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생각의 가장 훌륭한 도구는 그 생각을 적는 것이다. (pp.208-9)
20세기 초 프랑스 과학자 르네 블롱들로는 'N선'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방사선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로버트 우드가 N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내기 전까지 100명이 넘는 과학자가 N선에 관한 논문을 300편 이상 썼다. 대체 이들은 무엇을 본 것일까? 조사 결과 눈에 있는 간상세포가 빛을 원래보다 더 밝게 감지해서 만들어진 환상 내지는 착각이었음이 밝혀졌다.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진실은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다.
<보다>는 소설가 김영하가 2013년 씨네21과 그라치아에 연재한 글을 엮은 산문집이다. 당시 화제가 된 영화와 책에 대한 글도 있고 사회적 이슈에 대한 글도 있는데, 이들은 모두 '보다'라는 키워드로 연결된다. 저자는 영화 <설국열차> 속 머리칸과 꼬리칸 승객들의 모습에서 한국 사회의 빈부 격차를 '보고', 마르셀 에세의 소설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에서 스마트폰에 시간을 저당잡힌 현대인들의 모습을 '보고', 미국 뉴욕에 새로 생긴 유니클로 매장에서 패스트패션 시대의 책의 미래를 '본다'. 나와 같은 책, 같은 영화를 보고 같은 시대를 사는데도 다른 차원의 것을 보고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주는 저자의 식견에 새삼 놀랐다.
사람들은 영화를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니다. 벽에 비쳐지는 평범한 그림인 영화는 현실의 환영이지 실재하는 물건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이건 이미지의 문제가 된다. 대개 처음에는 영화를 수동적으로 보게 된다. 그렇지만 영화가 끝날 무렵이 되면 우리는 영화 속에 흠뻑 빠지고 만다. 두 시간 동안 매혹당하고, 속임수에 넘어가고 즐거워하다가 극장 밖으로 걸어나오면 우리는 그동안 본 것을 거의 잊어버리고 만다. 소설은 전혀 다르다. 책을 읽을 때에는 단어들이 말하는 것에 대해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노력해야 하고 상상력을 동원해야 한다. 그런 다음 상상력이 활짝 열리면 그때는 책 안의 세계가 우리들 자신의 인생인 듯 느끼고 그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냄새를 맡고, 물건들을 만져보고 복합적인 사고와 통찰력을 갖게 되고 자신이 3차원의 세계에 들어와 있음을 알게 된다. (p.128 폴 오스터,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열린책들, 2001)
저자는 '많은 사람이 뭔가를 '본다'고 믿지만 우리가 봤다고 믿는 그 무언가는 홍수에 떠내려오는 장롱 문짝처럼 빠르게 흘러가버리고 우리 정신에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며 '한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데에서 좀더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정말이지 우리는 많은 것을 본다. 밥을 먹거나 차로 이동할 때, 심지어는 화장실에 갈 때에도 책이나 신문, TV, 인터넷 등 '볼 거리'로부터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보는 건 좋다. 문제는 '보기만 하는 것'이다. 본 것이 모두 진실은 아니기 때문이다. 본 것을 모두 진실이라고 믿거나 아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오해나 착각을 피하기 위해서는 본 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구분하고 판단하는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
오늘은 세월호 사고 1주기다. 온종일 쏟아지는 기사와 사진, SNS의 글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무엇보다 답답했던 건 1년 전 오늘과 다름 없이 멀뚱히 화면만 보는 나 자신이었다. 언제까지 보고만 있을 것인가. 제대로 마주해 보긴 했던가. 목격자로서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할까. 저자는 '보고 들은 후에 그것에 대해 쓰거나 말하'라고 하지만, 나는 보다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일을 하고 싶다. 그것이 먼저 떠난 이들이 보지 못한 세상을 본 사람의 책임이자 의무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