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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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임은 그예 건너시고 말았네. 물에 빠져 돌아가시니 가신 임을 어이할꼬'. 미야모토 테루의 1979년작 <환상의 빛>은 사랑하는 임을 잃고 슬퍼하는 여인의 마음을 노래한 고대가요 <공무도하가>의 일본 소설판이라고 봄직하다. 표제작 <환상의 빛>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딛고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해 행복에 부풀어 있던 여인이 갑작스런 남편의 자살로 방황하다 다른 도시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여인은 재혼을 하고, 새 남편에게 사랑을 받고, 사랑스러운 두 아이를 키우고,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어도 잊혀지지 않는 전 남편을 향해 허공에 대고 말을 건다.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을 부르고 또 부르고, 물어도 알 수 없는 죽음의 이유를 묻고 또 묻는 여인의 모습은 애처롭다 못해 성스러울 정도다. 어떤 노력이나 재주로도 시간을 되돌릴 수 없고 운명을 극복할 수 없는 건 소설 속 여인이나 소설 밖에 있는 나나 인간이라면 마찬가지로 겪는 숙명이니 말이다. 
 

다른 세 편의 소설에도 주인공이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통해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이 반복된다. 허나 이들이 궁극적으로 안타까워하는 건 한때는 내 옆에서 숨을 쉬었던 사람이 지금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죽은 이가 살아있던 날에 자신이 했을 법한 ㅡ 그러나 하지 않은 ㅡ '선택'이다. 남편의 외도를 용서하고 같이 살았더라면, 그 날 친구와 계속 같이 있었더라면, 강물에 추락한 친구를 살려냈더라면 내 인생은 어땠을까. 머리로는 충분히 생각하고 상상할 수도 있지만 현실에서는 흘러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고 일어난 일을 번복할 수 없고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 이러한 인간의 얄궂은 숙명을 작가는 빛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암흑같은 심연인 '환상의 빛'이라는 단어로 형상화한 것이 아닐까. 새 해가 밝았음에도 지난 날의 묵은 상처와 고민을 여전히 안고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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