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브레스트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3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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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는 먼 나라다. 지리적으로만 먼 것이 아니라 언어, 문화, 종교 등 여러모로 봐도 비슷한 부분이 별로 없다. 하지만 20세기 이후의 역사는 비슷한 부분이 적지 않다. 노르웨이의 국민 작가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 3편 <레드브레스트>​를 읽은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이 소설에 묘사된 노르웨이의 현대사는 ​혼란 그 자체다. 20세기 초까지 이웃나라 스웨덴에 점령된 상태였고, 세계대전 직후 국왕 일가는 영국으로 피신했으며, 잇속에 밝은 사람들은 독일이나 러시아 편에 붙어 떵떵거리며 살았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속절없이 전쟁에 끌려가 목숨을 잃었다. 어떤가. 우리나라의 현대사와 비슷하지 않은가.



이 소설에서 저자는 이전 작품과 달리 독자를 외국이 아닌 과거로 초대한다. 그것도 눈 깜짝하는 새에 머리 위로 포탄이 쏟아지는 제2차 세계대전의 전장으로. 물론 주인공 해리 홀레도 함께다. 불미스러운 일로 경찰청에서 국가정보국으로 자리를 옮긴 해리는 하루가 다르게 세력이 불어나는 신나치주의 세력을 감시하라는 명령을 무시하고 매르클린 라이플이라는 무시무시한 총을 사용한 연쇄 살인 사건에만 관심을 쏟는다. 소설은 해리 홀레가 있는 세기말의 노르웨이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대의 유럽을 오가며 살인 사건과 그 원인이 된 역사적 진실을 동시에 좇는다.



이 소설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언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노르웨이가 현재 당면하고 있는 인종주의, 신나치주의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인종주의자, 신나치주의자들은 단순히 나치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과 이민자, 외국인 등 소수자의 인권을 유린하며 북유럽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 저자는 이런 자들이 나타난 원인을 노르웨이의 암울한 역사에서 찾는다. 전후 나라를 버리고 도망갔던 국왕 일가가 왕권을 되찾고, 독일이나 러시아에 나라를 팔았던 사람들이 정부나 기업의 요직을 차지한 어두운 역사 말이다. 저자는 이들의 비참한 말로를 보여주며 사람이 심판하지 못한 것을 시간이 단죄하리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대학 시절, 북유럽의 현대사를 공부한 적이 있다. 그 때는 노르웨이가 EU가입을 거부하는 이유라든가 북유럽에서 신나치주의자가 기승하는 원인 등에 대해 교과서로만 간략하게 배웠는데, 이번에 이 소설을 읽으면서 더 정확히, 속시원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역사가나 학자보다도 소설가가 역사와 정치, 사회를 더 잘 이해하고 설명한다는 것이 놀랍고, 웬만한 역사책이나 학술서보다도 독자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마음을 울린다는 것이 대단하다. 스토리텔링의 위력을, 요 네스뵈의 필력을 다시 한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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