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는 생물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힘이 장사네요." 칭찬받았다고 생각, "네, 저 장사예요!" 장난스럽게 브이. 그런데 나중에 술자리에서 그 남자는 웃으면서 이렇게 조언해주었다. "그럴 때는 못 든다고 하는 편이 여자로서 더 점수가 올라가요."


음, 알고 있다. 너무 잘 알고 있다. 친구가 그런 유의 패턴을 악용하는 것을 몇 번이나 목격했고, 나도 그녀들에게 목격됐을 터. 할 수 있는 일도 못 한다고 해보는 것이 인간. 아무리 정교해도 로봇들은 알 리가 없다. 나는 그 때, 가볍게 내기를 했었다. 못 해요, 못 들겠어요, 해주세요, 라고 하지 않는 나를 "멋지네"하고 생각해주는 남자였으면 좋겠다고, 아주 조금 기대했다. (pp.94-5)

 

마스다 미리는 1969년생으로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아무래도 싫은 사람>, <수짱의 연애> 등 '수짱 시리즈'를 비롯해 <밤하늘 아래>, <나는 사랑을 하고 있어> 등 다수의 작품을 발표해 일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인기다. 나 역시 국내에 발표된 마스다 미리의 작품은 모두 읽어본 열성팬. 볼수록 정감 있게 느껴지는 그림과 위트 넘치는 만화, 예리한 관찰과 섬세한 묘사가 돋보이는 글까지 매력을 말하자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좋은 건 2,30대 여성의 예민한 심리를 치밀하게 묘사한 점. 낄낄 소리가 입에서 절로 나올 정도로 우스운 일부터 눈물이 찔끔 나올 만큼 가슴 아픈 일까지, 마치 내 일상을 들여다 보고 그대로 옮긴 것 같은 글을 읽고 그림을 볼 때마다 저절로 힐링이 된다.

 

최신간 <여자라는 생물>은 마스다 미리 작품 중에서도 복잡 미묘한 여자들의 심리를 예리하게 집어낸 작품이다. 저자 자신이 여성으로서 직접 겪거나 관찰한 일을 담은 책이다보니 저자의 과거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 많다는 점이 첫번째 장점. 아이에서 소녀로, 소녀에서 여성으로 변하는 자신이 어색하기만 했던 학창 시절부터 오사카에서 도쿄로 상경해 홀로 분투했던 20대, 몇 번의 혼담을 놓치고 독신으로서의 삶을 즐기고 있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생각보다 다사다난하게 살아온 작가라는 걸, 전에도 몰랐던 건 아니지만 이 책을 통해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자신의 일생과 일상을 솔직하게 공개하는 점 또한 저자의 인기 요인 중 하나다. 


여성(性)에 관한 글인 만큼 성에 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첫장에 나오는 '남자아이는 오칭칭(おちんちん, 남자의 성기를 뜻하는 말). 그럼 여자아이의 것은 뭐라고 할까?'라는 질문은 우스운 수준. 20대 때 처음 만난 중년 남성에게 하룻밤을 같이 보내자는 제안을 받은 일, 예전 남자친구와 모텔에 갔던 경험 등 눈이 크게 떠지는 대목도 눈에 띄지만 선정적인 느낌은 아니다. 오히려 유부남에게 애인 제의를 받고 분해서 잠을 못 이루었다는 저자의 고백을 읽으니, 나를 한 사람의 인격체가 아닌 성적인 대상이나 도구로 보는 사람을 마주했을 때의 황당함과 분노가 떠올라 공감이 되고,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위로가 되었다.

허나 '여자라는 생물'은 그보다 더 심오하고 복잡한 것. 남성에 대응되는 성으로서의 여성만이 아니라, 여성 그 자체의 속성에 대해 다양하게 조명한 점이야말로 두번째 장점으로 들만 하다. 예를 들면, 무거운 걸 덥석 잘 드는 여성보다는 못 든다고 빼는 여성이 더 매력적이라는 남자의 말을 듣고 '못 해요, 못 들겠어요, 해주세요, 라고 하지 않는 나를 "멋지네"하고 생각해주는 남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는 저자의 말이 그렇다. 나를 일개 여성이 아닌 독립되고 특별한 하나의 존재로 봐주는 남자, 어디 없을까? 점심으로 입 주변이 끈적끈적해지는 카레빵이나 회과육 빵처럼 특이한 빵보다는 먹는 모습이 귀여운 메론빵을 고르는 여자가 좋다는 남자의 말도 우습다. 아니, 그런 남자의 말을 버젓이 여고생이 보는 잡지에 싣는 (아마도 여성) 편집자들이 더 우습다고 해야할까. 여자라는 생물만큼이나 복잡한 것 같다, 이 세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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