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 신경숙 짧은 소설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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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하면 슬프고 어두운 소설을 주로 쓰는 작가라고 생각했다. <외딴 방>이 그랬고, <리진>이 그랬고, <엄마를 부탁해>도 그랬으니. 허나 그건 오해이거나 착각인지도 모르겠다. 2013년 봄에 나온 소설집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에는 저자의 이전 소설에서 읽은 적 없는 즐겁고 밝은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달의 이면을 보지 못하듯 이제껏 신경숙이라는 작가의 다른 얼굴은 보지 못한 것일까.



할머니4 : 근데 예수가 누구꼬?

잠시 잠잠했다.

할머니5 : 글쎄...... 모르긴 해도 우리 며늘애가 자꼬 아부지, 아부지, 해쌌는 거 보이 우리 사돈영감이 아닌가 싶네. 

(사랑스러운 할머니들, p.205)

 


배경은 대개가 거리나 전철역, 치과, 북카페 같은 일상의 공간. 스님을 전도하려는 목사님, 담장을 넘다가 행인과 마주친 도둑 같은 콩트나 촌극에서나 볼 법한 인물들도 더러 나오고, 탤런트 주현의 배가 뭐 그리 멋있냐는 딸의 지적에 발끈 화를 내는 어머니, 누나와 결혼한 친구를 흉보는 남동생 같은 평범한 인물들이 주로 나온다. 압권은 책 마지막에 실린 <사랑스러운 할머니들>에 나오는 할머니들이다. 미뤄왔던 어금니 치료를 받게 된 화자는 진료실 밖 대기실에 있는 할머니들의 수다를 듣게 된다. 예수가 죽었네, 맨발로 싸돌아댕기다 못에 찔렸네 하는 요상한 대화가 이어지고, 급기야는 예수를 며느리가 '아부지, 아부지'하고 부르는 게 사돈영감인 듯 싶다는 할머니의 말에 치료를 받던 화자도, 치료를 하던 치과 의사도 '빵 터졌다'.



달아! 대체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혹시 알고 있니? 

난 다음 날 세 개의 접시를 조용히 집 안으로 들여놨어. 그들에겐 그들의 세계가 있었을 거야. 이 겨울을 나는 방법이 그들 나름대로 있었을 거야. 그들의 세계에 내가 개입하면서 생긴 이 싸움을 그치게 하는 길은 내놓았던 세 개의 접시를 들여놓는 일밖에는 없더군.

그런데 달아, 왜 이렇게 막막한 거지? 

(겨울나기, pp.22-3)



허나 이 책을 심심풀이용으로 읽기는 아쉽다. 생각 없이 읽기엔 가볍고 우습기까지 한 이야기 속에는 신경숙 작가 특유의 예리한 관찰과 삶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다. <겨울나기>라는 소설에서 화자는 추워진 날씨를 걱정하는 선한 마음으로 길고양이들에게 사료를 주기 시작한다. 그런데 고양이들의 사료를 까치가 탐내고 이들이 패를 갈라 싸우기 시작하면서 화자는 자신의 개입이 자연의 순리를 어지럽히는 부작용을 낳았음을 깨닫는다. 이렇게 일상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놓치거나 무시하기 쉬운 감정과 생각들을 잡아낸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신경숙이라는 작가의 이면을 보았고, 또한 소소한 일상의 이면을 알게 되었다. 여전히 다른 면을 보지 못한 작가와 소설은 많고, 세상사는 더 그럴 터. 새삼 책 읽고 인생 사는 일의 무게가 묵직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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