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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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동안 스티그 라르손, 요 네스뵈 등​ 북유럽 출신 작가들의 책을 많이 읽었다. 읽으면서 지리적으로도 멀고 역사적으로도 별 관련이 없는 듯 보이는 이곳 소설의 정서가 ​우리나라 소설의 정서와 비슷하다는 점이 신기했다. 그건 아마도 20세기에 주변 강대국 사이에 낀 약소국으로서 1,2차 세계대전을 치른 역사적 경험과, 이념 갈등 및 과거사 청산 등의 문제를 안고 있는 정치적 상황이 유사하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나라의 비극적인 ​근현대사가 실은 그 시대의 보편적인 현상이며, 그런 우리 역사는 주변 강대국보다도 북유럽 국가를 비롯한 약소국 국민들이 더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요즘들어 북유럽 소설이 국내에 부지런히 소개되고 많이 읽히는 건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올해 국내에서 화제가 된 북유럽 작가로는 요나스 요나손이 있다. 데뷔작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으로 자국 스웨덴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끈 그의 소설은 막장 드라마를 연상케 하는 기막힌 스토리도 일품이지만, 역사와 정치에 대한 풍자와 은유가 핵심이다. 전작이 100세 생일을 맞은 노인이 ​과거 프랑코, 스탈린, 김일성 등 20세기 현대사의 중요한 인물들을 만났다는 설정을 통해 2차 세계대전 전후 국제정치를 시원하게 풍자했다면, 두번째 소설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와 냉전 시기의 군비 경쟁 등을 통해 인종 차별, 핵 개발 등 여전히 남아있는 문제들을 유머러스하게 비꼬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비록 잘 모르는 스웨덴 국내 정치를 풍자한 대목에서는 시원하게 웃지 못했지만, 주인공 놈베코가 빈민촌에서 탈출해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이 넬슨 만델라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테러리스트에서 대통령으로 수직상승하는 모습과 겹치는 것이 절묘했고, 남아공에서 비밀리에 만든 원자폭탄이 우여곡절 끝에 중국으로 간다는 결말은 지금의 국제정치 상황을 절묘하게 비꼬아서 웃겼다.



주인공 놈베코가 빈민촌에서 분뇨통이나 나르던 신세에서 재능과 노력으로 위기를 이겨내고 원하던 삶을 살게 되는 과정 자체도 감동적이었다. 어린 시절 그녀의 소원은 그저 배불리 먹고  실컷 책을 읽는(이건... 내가 거의 매일 하는 일이다!), 아주 사소한 것이었지만, 사람들은 그녀가 흑인 여성이고 자국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또는 각자가 믿는 정치나 이념에 빠져 그녀를 핍박하고 무시했다. 그러나 놈베코는 어떤 정치적, 이념적 편견 없이 모두를 성심성의껏 대했고, 결과적으로 그녀가 베푼 모든 친절과 배려를 보답받았다. 물론 보답을 받기 위해 착하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편견과 오해로 가득찬 이 사회에서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고 친절히 대하는 것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고 행복해진다는 역설은 잊고 있던 인생의 가르침을 되새기게 했다. 그리고 이렇게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이 오로지 노력만으로 성공하는 사례를 소설에서나 볼 수 있다는 것은 스웨덴과 우리나라가 똑같이 안고 있는 문제일 터.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우스우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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