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기담집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5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비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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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에도 관심이 없다. 윤회에도, 영혼에도, 예감에도, 텔레파시에도, 세계의 종말에도 솔직히 별 흥미가 없다. 완전히 불신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런 종류의 일들이 있다고 해도 뭐, 괜찮다고 생각한다. 다만 단순히 개인적으로 흥미가 없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수의 불가사의한 현상이 나의 조촐한 인생 곳곳에 다채로운 재미를 더해주곤 한다." (pp.16) 


... 라고 담담히 말한 하루키처럼 나 역시 기담에는 그닥 흥미가 없다. 나는 그 흔한(?) 귀신도 본 적 없거니와 귀신이 나오는 공포 영화에도 관심이 없다. <도쿄기담집>이라는 책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도 호기심이 들기보다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딱히 '기담집'이라고 하지 않아도 하루키 소설 대부분이 기담에 가깝지 않았던가? 게다가 배경도 거의 다 도쿄인데...! 그러나 나보다 먼저 하루키 팬이 된 동생의 강력추천과, 마침 비채에서 개정판이 나오는 기막힌 타이밍으로 예약 구매까지 해서 읽어본 결과... 아니, 내가 왜 이 책을 이제야 읽었지? 이 책을 안 읽고 하루키 팬이랍시고 떠들고 다녔던 지난날이 부끄러울 정도다.

 

 

<도쿄기담집>은 소설집으로서는 드물게 소설 다섯 편이 고르게 재밌거니와 저마다 개성이 강렬하다. 맨처음에 실린 <우연 여행자>는 줄거리만 봐서는 흔한 불륜 소설인데 결말에 가서는 인생사에 대한 교훈마저 느낄 수 있었고, 개정판 표지 디자인에 영감을 준 듯한 <하나레이 해변>은 아들과의 사별 후 감정을 추스리지 못했던 주인공이 뜻밖의 사건들을 겪는 과정이 묘하게 오싹했다. <어디가 됐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는(제목이 뭐 이렇게 길다냐!) 뒷이야기가 궁금해 장편으로 늘렸으면 싶고, 반대로 <날마다 이동하는 콩팥 모양의 돌>은 소설이 단정하게 완결된 느낌이 좋았다. 마지막 <시나가와 원숭이>는 학창시절의 사건이 현재에 영향을 준다는 점이라든가 기이한 원숭이의 출현 같은 것이 하루키 소설에서 자주 보이는 설정이라서 반가웠다. 

 


생각해보니 나는 귀신이며 기담에는 관심이 없지만 이렇게 소설가의 입을 빌어 기담을 듣는 건 좋아하는 것 같다. 엄밀히 따지자면 기담의 '기(奇)'보다는 '담(談)'쪽을 좋아하는 것이지만... 어찌됐든 <도쿄기담집>을 읽어보니 기담, 도시전설 특유의 재미도 있고, 곳곳에 숨어있는 '하루키 월드'의 특색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해서 좋았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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