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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가는 문 - 이와나미 소년문고를 말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어야 생각이 깊어진다는 말은 생각하지 말기로 합시다. 책을 읽는다고 훌륭해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는 스스로 책을 엄청 많이 읽은 편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야 소년 시절에는 부모님이 사주신 책을 읽거나 세책점(우리나라의 도서 대여점 개념)에서 어린이용 명작 동화를 빌려 읽기도 하고, 남들이 읽으라는 책을 찾아 읽기도 했지만, 언제나 책보다는 그림이 좋았고, 성인이 되어서도 그림이 많이 들어간 어린이문학을 더 열심히 읽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열심히 읽은 어린이문학이 훗날 명작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만드는 데 발판이 되고,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모험> 등 전세계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은 작품을 만드는 것으로 이어졌으니 '책을 읽는다고 훌륭해지는 것'이 영 아닌 건 아니지 않을까?
이와나미 소년문고 창간 60주년을 기념해 만든 <책으로 가는 문>은 크게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이와나미 소년문고 중에 미야자키 하야오가 직접 읽고 선별한 50편을 소개하는 부분으로, <어린 왕자>, <삼총사>, <비밀의 화원> 등 친숙한 작품이 대부분이지만 한국인인 나로서는 생소한 작품도 더러 있었다. 2부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TV인터뷰를 재구성한 것인데,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미야자키는 "전쟁을 한 것은 군부이지 내가 아니다"라며 전쟁 책임을 회피하는 아버지를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으며 종종 충돌했지만,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겪으면서, 젊은 시절 관동 대지진과 전쟁을 겪으며 여러번 죽을 고비를 넘긴 아버지에겐 거창한 대의보다는 오늘 당장 먹고사는 일이 더 중요했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그러나 그는 무책임으로 일관한 아버지의 '값싼 니힐리즘'만큼은 비판한다. 원자력 발전 폐기하기, 청산할 수 없는 빚을 자손에게 남기지 않기 등 해결해야 할 문제도 제시한다. 정치는 물론 이념도, 국가도 혐오하는 것으로 유명한 그가 이런 국가적 위기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발언한 점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발언이 무색하게 이 책 출간 이후 몇 년 안 되어 은퇴를 선언한 것은 왜일까? 언론의 추측대로 정치권의 압력이었을까? 아니면 스튜디오 내부의 문제? 너무 잔혹해서 어른들 소설은 읽지도 못했을 만큼 여린 감수성의 소유자였던 그가 왜 돌연 은퇴를 선언한 것인지 궁금하고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