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이지 않은 독자
앨런 베넷 지음, 조동섭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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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 뭐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막상 어른이 되고 보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보다는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았다. 공부, 취업, 연애, 결혼, 하다 못해 아침에 뭘 입고 점심에 뭘 먹을지 결정하는 일마저도. 내 나이 스물아홉. 지금 내가 그나마 온전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을 세어보니 어떤 책을 읽을지 고르고 서평을 쓰는 일뿐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책 읽고 글 쓰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 비록 돈도 명예도 생기지 않지만, 누가 하라고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닌 자발적인 활동이기에.



영국의 극작가 앨런 베넷이 쓴 <일반적이지 않은 독자>의 주인공도 내 말에 공감할 것이다. 그녀의 직업은 영국 여왕(물론 진짜 영국 여왕이 아니라 가공의 인물이다. 픽션!). 결코 '일반적이지 않은' 그녀의 삶은 사실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화려하고 안락하지만은 않다. 생각해 보라. 사생활은커녕 휴일도 쉬는 시간도 없고, 나이가 들어도 은퇴가 없는 종신직이다. 여왕은 뭐든 마음대로 쥐락펴락 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취미 하나를 고르더라도 국민의 감정과 이해집단을 생각해야 하는 피곤한 자리인 줄은 몰랐다.



심지어는 책 읽기까지도. 이 책에서 주인공 여왕은 우연히 버킹엄 궁 안으로 들어온 이동도서관에 들렀다가​ 주방 보조로 일하는 청년 노먼이 추천한 책을 읽고 독서의 재미에 푹 빠진다. 하지만 대신들과 신하들은 여왕의 새로운 취미를 썩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일과 틈틈이 책을 읽는 데다가 심하게는 업무를 보면서도 책을 읽고, 그저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고 닦달하기까지 하니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모습,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나?)



그러고보면 독서란 한 나라의 왕 또는 여왕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책이라는 '영토'에서 문장이라는 '국민'을 읽고 해석하는 '권리'를 온전히 자신만이 소유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래서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책을 읽는 사람들을 흠모하면서도 경계하고 때로는 혐오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맛본 적이 없는 혁명과 정복의 재미를 시시때때로 느끼는 이들이 두려울 테지. 하지만 진정한 독서가라면(왕 또는 여왕이라면) 이런 남들의 시기와 우려에는 아랑곳 않고 자신의 뜻을 관철시킬 줄도 알아야 할 것이다. 


 

언젠가는 남이 물려준 왕국을 통치하는 대신 직접 왕국을 만들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책에서 여왕은 자기만의 왕국이라 할 수 있는 책을 직접 써보기로 결심한다. 심지어는 책을 완성하기 위해 엄청난 결단을 내리는데(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밝히지는 않겠다), 그 결단이 이제껏 그저 책을 읽고 감상을 끼적일 뿐이었던 나에게는 무척이나 멋지고 대단해 보였다. 그것은 어쩌면 여왕이 최초로 내린, 온전한 의미의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었을까. 그런 여왕이 쓴 책은 어떤 내용일지, 비록 실제로 읽을 수는 없겠지만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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