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보이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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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했다. 모든 건 너의 선택이라는 걸 잊지 말아라. 원하는 쪽으로 부는 바람을 잡아타면 되는 거야. 절대로 네 혼자 힘으로 저 봉우리를 넘겠다고 생각해서는 안 돼. 혼자서는 어디도 갈 수 없다는 걸 기억해. 너를 움직이게 하는 건 바람이란다. 너는 어떤 바람을 잡아탈 것인지 선택할 수 있을 뿐이야. (p.300)


<원더보이>의 주인공 소년에게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초능력이 있다. 최근 나는 다른 사람은 됐고 내 생각이나 제대로 읽는 능력이 있었으면 싶다. 나이는 나이대로 먹고 시간은 시간대로 흘러가는데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아홉수라 그런가? 남들 말하는 삼재??? <원더보이> 소년에게 초능력이 있는 것처럼 뭐라도 좋으니 나한테도 초능력 같은 게 생겨서 온갖 현실의 문제들을 해결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 소년의 초능력이 마냥 부러운 건 아니다. 초능력도 애초에 하나뿐인 가족이었던 아버지를 사고로 잃으면서부터 생긴 거였고, 하필 그 사고에 간첩이 연루된 바람에 정부에 끌려가기도 했다. 어렵게 몸을 의탁한 출판사는 문을 닫고, 첫사랑 누나에게는 남자로도 안 보인다. 앞으로 뭘 하며 어떻게 살지도 까마득하고(이건 나랑 똑같다). 가장 중요한 건, 그런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도 만나고픈 엄마의 행방을 알 수는 없다는 사실. 능력이 있든 없든 삶이 고달픈 건 마찬가지인 걸까.



이 소설은 김연수의 소설 중 가장 처음에 읽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과 비슷해서 그의 소설을 오랜만에 읽은 게 아닌데도 반가웠다.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소년 또는 청년 같은 미성숙한 화자가 등장하여 밝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지금 이곳 대한민국 서울과 우주를 연결하는 구도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처음 읽고 매혹된 그것과 비슷해서 내가 이제까지 그의 글을 계속 읽는 까닭 - 문학과 사회, 과거와 현실, 우리나라와 세계를 연결하는 점 - 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마침 요즘 힘든 날들이 이어지고 있는데 오랜만에 읽은 그의 소설이 유쾌하면서도 감동적이어서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절대로 네 혼자 힘으로 저 봉우리를 넘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문장이 그래서 내 가슴에 더 와닿은 건지도 모르겠다.  


+


소설에는 주인공 소년이 출판사 사장 아저씨로부터 책 읽는 방법에 대해 배우는 구절이 나온다. 책이 있으면 먼저 그 책을 만져보기는 하지만 킁킁대며 냄새를 맡는다거나 귀퉁이를 씹어본 적은 없다. 이른바 '천재의 책 읽기'라고 하는 - 작가가 쓰지 않은 글을 읽으려고 애쓴 적도 별로 없다. 그걸 안 해서 내가 이제껏 책을 읽고도 요모양 요꼴인 걸까? 김연수는 정말 이렇게 책을 읽을까? 아, 궁금하다. 
 

 

책이 있으면 먼저 그 책을 만져보는 거야. 킁킁대며 냄새도 맡아보고, 한 귀퉁이를 찢어서 씹어보기도 하지. 그러면 대충 어떤 책일지 감이 올 거 아니겠니? 그러면 책을 펼쳐서 작가의 말을 읽어보고 목차도 살펴보지. 대부분의 책에는 앞뒤 표지에다가 뭔가 적어놓았을 텐데, 거기 적힌 글들을 읽으면 대개 무슨 내용인지 90퍼센트 정도는 알게 돼. 그다음에는 책을 덮고 상상하지. 그 책의 주제와 관련해 내가 알고 있는 건 무엇이고, 모르는 건 무엇인가? 만약 내가 이렇게 목차를 정하고 글을 쓴다면 어떤 내용으로 면을 채울 것인가? 그렇게 궁리하고 난 뒤에 책을 읽게 되면, 자기가 무엇을 몰랐는지 더욱 명확하게 알게 되지. 그런 점에서 책을 읽는 일차적인 목표는 자신이 뭘 모르는지 확실하게 아는 일이야. (중략)


그다음부터는 자기가 몰랐던 부분만을 반복해서 읽는 거야. 한 글자 한 글자 놓치지 않고.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 여기까지는 모범생들이 하는 책 읽기지. 그런데 이 방법을 적용하지 못하는 위대한 책들이 있어. 그건 바로 문학작품들이야. 그래서 어떤 책을 썼든 문학작품을 쓰지 못한 모든 저자들은 실패한 작가라는 말도 있는 거야.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면 이 문학작품들도 이해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지. 그러니까 천재의 책 읽기. 천재적으로 책을 읽으려면 작가가 쓰지 않은 글을 읽어야만 해. 썼다가 지웠다거나. 쓰려고 했지만 역부족으로 쓰지 못했다거나, 처음부터 아예 쓰지 않으려고 제외시킨 것들 말이지. 그것까지 모두 읽고 나면 비로소 독서가 다 끝나는 거야. 책을 다 읽는 일은 하루면 끝나는 것인데, 평생 읽어도 다 읽지 못하는 책이 이 세상에 수두룩한 까닭은 바로 그 때문이지.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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