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산티아고 - 소녀 같은 엄마와 다 큰 아들의 산티아고 순례기
원대한 글.그림 / 황금시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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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800킬로미터를 완주하겠다는 목표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길 위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 그리고 마을마다 담긴 오래된 삶의 켜들을 마음에 새기는 일이 더 중요한 것을. 엄마와 나눈 수많은 이야기가 허겁지겁 지나쳐버리는 풍경들보다 더 소중한 것이다. (p.142) 

 

신기하게도 엄마가 꽃을 그릴 땐 주위에 사람이 모여들었고, 엄마는 부끄럽지도 않은지 더 신나서 그림을 그렸다. 난 옆에서 '이게 글쎄 우리 엄마가 그린 거야. 놀랍지 않아?' 정도의 추임새를 넣어가며 호들갑을 떨었다. 무엇보다 엄마가 그렇게 행복해하는 표정은 처음이었으니까. (p.186) 

 

나도 이 길이 끝나기 전에, 엄마에게 이 말 하나만은 꼭 하고 싶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엄마와 함께여서 좋았다고. 엄마와 발맞춰 걸어서 더 좋았다고 말이다. (p.279)

 


얼마전 모 책 관련 팟캐스트에서 정유정 작가님이 히말라야 등반에 이어 산티아고 순례를 성공적으로 마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신자가 아니라서 산티아고 순례가 무엇인지, 신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많은 신자들이 이를 평생의 소원으로 간직하며 결코 쉬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도전하는 것을 보면 매우 큰 의미를 지니는 일인 것은 알겠다(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외국 연예인의 공연을 보러가거나 좋아하는 소설이나 영화 속 장소에 직접 가보는 것을 꿈꾸는 것만큼 의미있는 일이겠지?)

 

  

<엄마는 산티아고>는 20대 청년인 저자와 그의 어머니가 산티아고 순례에 도전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월간 <PAPER>와 <해피투데이>의 필진으로 참여하고 있는 저자 원대한은 2013년 봄, 전역을 하고 졸업반 복학을 앞두고 있던 중 어머니로부터 당신의 평생 소원이자 유일한 꿈인 산티아고 순례에 함께 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아무리 모자 사이라도 800킬로미터나 되는 먼 거리를 오롯이 함께 걷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터. 게다가 어머니는 평소에도 무릎이 안 좋았고 몇 년 전에는 허리 디스크 수술까지 받아서 자칫했다가는 몇달치 짐에 어머니의 짐을 지는 것도 모자라 어머니까지 들쳐 업고 걸어야 하게 될 지도 몰랐다. 그러나 평생에 어머니와 아들, 단 둘이 여행을 하는 일이 어디 흔한가. 게다가 그 여행이 단순히 관광이나 휴식이 아닌, 어머니의 평생 소원인 산티아고 순례라면, 자식으로서 꼭 이뤄드리고픈 꿈일 것이다. 그렇게 두 모자는 길을 떠났다. 

  

 

예상대로 어머니의 컨디션은 좋은 순간보다 좋지 않은 순간이 더 많았다. 아들은 그런 어머니를 내내 걱정했고, 가끔은 어머니 없이 다른 청년들처럼 여유롭게 순례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게다가 매일 숙소인 알베르게를 구하는 일은 어쩌면 그렇게 힘들던지. 어렵게 떠난 여행인만큼 한걸음 한걸음을 음미하며 걷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을 텐데 어머니 걱정, 숙소 걱정에 그러지 못한 심정이 너무나도 이해가 되어 안타까웠다. 하지만 어머니의 사랑과 그의 효심이 통했는지 위험한 순간마다 기적같은 만남과 행운이 이어졌다. 외국인 순례객들은 비록 말은 안 통해도 마음으로나마 두 사람을 응원해주었고, 어쩌다 만나는 한국인 순례객들은 반가운 우리말과 정겨운 한국 음식으로 기운을 북돋워주었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는 말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도 통했다.

  

 

아쉽게도 첫번째 순례는 어머니의 갑작스런 귀국 결정으로 완수하지 못했는데, 다행히도 그해 가을에 두번째 순례를 다시 떠났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설마 순례를 절반만 하고 책을 썼을리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심 걱정했는데, 오히려 두번째 순례길에 두 사람 모두 훨씬 더 능숙하고 여유있게 일정을 소화하는 것을 보며 순례는 단순한 여행이 아닌 성장과 성숙의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도 그렇지만, 나는 두번째 순례 때 어머니가 난생 처음 그림 그리기에 도전하기도 하고, 낯선 외국인들과 말을 섞어보기도 하며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때마다 어머니는 과연 어떤 기분이셨을까? 아들의 시점으로 쓰인 책이라서 어머니의 생각과 느낌을 알 수 없는 점은 다소 아쉽지만, 분명 평생의 소원을 이룬, 기적같은 여행으로 기억하시리라고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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