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는 인문학자 - 타클라마칸에서 티베트까지 걸어서 1만 2000리 한국 최초의 중국 서부 도보 여행기
공원국 지음 / 민음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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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인문학자>를 읽으면서 저자가 서문에 왜 <논어>에 실린 유명한 글귀 "그를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보다 못하다."를 인용했는지를 깨닫는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일단은 내가 지금 중국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너무 없다는 걸 깨달은 순간부터. 단순한 여행기인 줄 알았는데 읽어보니 중국의 역사서와 고전 등이 다수 인용되어 있어서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간 부분이 여럿 있었다. 저자가 중국지역학을 전공한 중국전문가라기보다는 내가 모르는 게 많아서가 아닐까 싶다. 그동안 중국 하면 중국 가수, 중국 드라마, 중국 영화 등등 대중문화 중심의 피상적인 것들만 보았지, 중국의 역사나 정치 문제 같은 건 세심하게 들여다보지 않았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듯이 뭐라도 보려면 어느 정도 아는 게 있어야겠다 싶었다.



내용이 다소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건, 비록 아는 건 별로 없어도 중국을 좋아하고 즐길 준비가 되어서이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 역사는커녕 가까운 청나라 시대에 대해서도 잘 몰랐는데, 최근 중국 사극 <보보경심>을 보면서 청나라에 급 관심이 생겼다. 드라마이기는 하나 영화 속 무대가 되는 중국의 전통 건축물이라든가 복식, 문화, 관습, 심지어는 말씨조차도 하나하나 새롭게 발견하고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드라마에 나오는 강희제, 옹정제 등 청나라 황제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마침 이 책에 두 황제의 민족 정책에 대해서도 나와있어 반가웠다. 드라마에서 내가 받은 인상과 달리 두 황제 모두 실제로는 이민족들에게 썩 좋은 이미지가 아니었으며, 드라마에는 낭만적으로 그려진 이민족 간의 교류가 실은 수많은 이들의 피로 물든 슬픈 역사라는 것을 알고 가슴 아팠다. 이렇게 몰랐다면 그냥 넘어갔을 내용들이 내게 하나하나 유의미하게 다가온 다 지금 내가 중국에 관심이 많아서일 것이다역시 아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즐기는 사람을 못 이긴다.



저자의 여행기도 재미있었다. 저자는 2003년부터 2011년까지 8년 동안 총 네 번의 장기 여행을 했다. 여행지는 위구르, 준가르, 티베트 등 중국의 서부 지역. 대체로 중국의 주류를 이루는 한족이 아닌 소수민족들이 거주하는 지역이라서인지 여행 여건이 무척 안 좋았다. 비록 결코 좋게 넘어갈 수 없는 사고(!)가 몇 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이곳에 사는 민족들이 중국 정부의 차별과 억압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터전을 일구며 살고 있는 모습을 좋게 평가했다. 학자가 쓴 글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좋은 문장들도 많았다. 저자는 이 척박한 지역을 자동차나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고 도보로 이동했는데 직접 두 발로 걷고 살로 느꼈기 때문인지 문장 한줄 한줄이 날 것처럼 생생했다. 인문학을 포함해 학문이라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이렇게 현실에 맞닿아있고 체험에서 비롯되어야 하는 것인데, 요즘의 학문과 학문하는 사람들은 책상 앞에 앉아 데이터화된 자료만 보고 있으니 한계가 있지 않나 싶다. 아는 사람보다는 좋아하는 사람, 즐기는 사람이 학자의 진정한 의미가 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밑줄 그은 문장들



별을 보기 위해서는 약간의 서늘함과 적막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부터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밖으로 나가 하늘에 있는 별을 보여 주는 대신, 방 안에서 별에 관한 그림책을 보여 주는 것이 오늘날의 교육이다. 사고는 피상적이며, 말은 많고, 그리고 끈기 없는 어린이들을 방 안에서 대량으로 만들어 낸다. 그러면서 어린이를 사랑한다고 한다. 책에 쓰여 있는 '별'과 내가 바라보고 있는 저 별은 같은 것일까? 그리고 밤하늘을 바라보는 어린이가 보는 별은 같은 것일까? 분명히 840년 그날 밤에도 에너지 넘치는 위구르 소년들은 낙타 가죽 아래서 함께 별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알 수 없는 날것의 감성을 교류하며 친구가 되었을 것이다. (p.100)



공자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초나라 왕이 활을 잃어버리고도 태연히 "초나라 사람이 줍겠지."라고 대답한 것을 높게 사면서도, "'사람이 잃어버린 것을 사람이 줍겠지.'라고 했으면 더 좋았을걸."이라고.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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