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령작가입니다
김연수 지음 / 창비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라는 게 뭐라고 생각하는가? 우리가 왜 이혼했다고 생각하는가? 이런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없다면 그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다만 며칠 굶은 짐승의 내장처럼 어둡고 습하고 꾸불꾸불한, 그러나 텅 비어 막히지 않고 계속 어디론가 이어지는 골목길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 제중원 뜰에는 나무 한그루가 서 있었다. 박지원의 집앞에 있었던 나무, 홍영식의 집앞에 있었던 나무, 그날 길 잃은 아이들처럼 그녀와 함께 걸어다녔던 그 골목길들, 그 가운데 서 있던 나무. 그 나무 한그루 말이다. 그녀와 내가 헤어진 지금, 이 모든 일이 과연 우연일 뿐이라고 생각하는가? (p.21)

  

역사학이란 내게 진실을 다가가는 도구였다. 하지만 역사를 공부하면 할수록 나는 거짓말이 들통나는 게 아니라 들통난 것들이 거짓말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p.43)

  

그런 역사책은 하나도 의심하지 않고 믿으면서 내가 이런 말을 하면 거짓말이라고 내 얼굴에 침을 뱉지. 고작 일백년도 지나지 않아 휴짓조각으로 버려진 믿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내게 마구 발길질을 하지. 그게 바로 자신이 사내라고 믿는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하는 일이지. 왜냐하면 내 손이 바로 진실을 말해주니까. 역사책에 나와 있지 않은 진실을 말해주니까. (p.76)

 

 

불면의 밤. 새벽 세 시가 되어도 잠이 안 와 할 수 없이 책을 꺼내들었는데, 그게 하필이면(!) 김연수의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였다. 김연수 작가를 무척 좋아해서 신간이 나오는 대로 구입은 하고 있지만 읽은 책은 사실 얼마 안 된다. 이 책도 사놓고 읽지 않은 채로 놔둔 지 꽤 된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죄책감 비슷한 것을 안고 있었는데, 마침 이 책이 손에 잡혔고 밤은 길고 잠이 안 오니 읽을 수밖에(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을 끝까지 다 읽고도 잠이 안 와서 밤을 꼴딱 새웠다).



김연수 작가의 소설은 주로 최근작들만 읽어서일까. 2005년작에 나온 이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만 해도 왠지 거칠고 투박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기는 좋았는데, 그건 김연수 하면 떠오르는 특징들, 그만의 작품 세계가 잘 드러났기 때문이다. 내가 김연수 작가의 소설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세계관이 아주 넓다는 것이다. 시대적으로는 근현대부터 조선시대를 넘나들고, 공간적으로는 외국을 무대로 하는 것도 많고 아예 외국인이 주인공인 경우도 있다.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 실린 작품들을 보면, 맨처음에 실린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는 전철에서 우연히 전처를(말장난?) 만난 남성이 안국동과 가회동 주변을 걷다가 박지원을 떠올리고,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에는 한 청년이 자살한 여자친구가 죽기 직전에 <왕오천축국전>을 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서울 시내, 특히 경복궁 근처의 북촌 주변을 걸을 때마다 불과 백 여 년 전만 해도 갓 쓰고 도포 입은 사람들이 이 거리를 걸어다녔다는 생각을 하며 설레고, <왕오천축국전>처럼 몇백 년도 전에 쓰인 글을 보며 감격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감각이 아닌가 싶다. 



이국의 정서가 녹아있는 것도 김연수 소설의 특징 중 하나다. <그건 새였을까, 네즈미>의 주인공은 일본인, <뿌넝숴>의 주인공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중공군 노인, <거짓된 마음의 역사>의 주인공은 19세기 말 조선에 파견된 미국인 탐정이다. 주인공이 한국인이고 한국이 배경이어야 한국소설로 분류될 수 있다면 이 소설들은 한국소설로 분류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타자를 인식함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더욱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이 소설들을 읽고 있노라면 외국과 다른 한국만의 정서와 문화, 전통이 더욱 뚜렷하게 보여 오히려 한국소설임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다. 비슷한 원리로 오로지 자기 안에만 침잠하지 않고 외부로 시선을 돌림으로써 오히려 자아를 드러내는 것도 김연수 소설의 특징 중 하나다.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은 대부분이 역사나 세계 같은 거창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막상 읽어보면 역사 속의 개인, 세계 속의 개인이 보이고 궁극적으로는 사람, 그리고 내가 보인다. 시공간뿐 아니라 자아와 타자, 작가와 독자 사이의 경계까지 자유로이 누비는 김연수의 작품 세계가 나는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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