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엽 감는 새 2 - 예언하는 새 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199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1Q84>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은, <1Q84>에선 '전공투'로 불리는 일본의 60년대 학생운동의 잔여세력과 신흥 종교 단체의 위험성을 중점적으로 그린 잔면, <태엽감는 새>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가 만주와 몽골, 소련 등지에서 벌인 만행과 그로 인한 군인, 민간인들의 피해를 그린다는 점이다. 하루키 하면 역사적, 사회적인 메시지보다는 개인의 내면 세계나 환상을 주로 그리는 작가로 알려져 있는데, 읽으면 읽을 수록 역사적, 사회적 메시지가 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태엽감는 새>만 보아도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전쟁 상태의 인간들이 얼마나 극적인 행동과 선택을 하는지, 전쟁을 겪지 않은 전후 세대에게 전쟁의 비극이 어떻게 전해지는지 등이 자세히 그려져 있다(전전 세대의 피해자는 마미야 중위와 너그메트이며, 이들의 고통을 계승한 전후 세대의 피해자는 도루와 구미코, 시나몬 등이다). 하루키는 다만 그것을 환상 또는 문학적 은유로서 빗대어 표현할 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강도는 다른 작가들의 그것에 비해 약하지 않다.

 

 

<태엽감는 새>는 하루키 월드를 여지없이 드러낸 소설, 역사적,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소설로도 읽을 수 있지만, 하루키 하면 떠오르는 개인의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 묘사 또한 뛰어나다. 나는 특히 주인공 오카다 도루에 감정이입이 잘 되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나처럼 나이가 서른 즈음이고, 잘 다니던 직장에는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그렇다고 새로운 일을 시작할 마음도 들지 않아 고민하는 처지까지 나와 같기 때문이다(다만 나한테는 아직 집 나갈 남편은 없다^^). 거창한 인생의 목표도, 사회에 대한 관심도 없고, 그저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하나하나 처리하기에 급급한 모습이 어찌나 나같던지(아, 나도 우물에 들어가고 싶다!). 그런데 하루키는 이런 무력하고 소시민적인 느낌을 결코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세탁소 주인과 오카다의 외삼촌처럼(게다가 이 오카다의 외삼촌이라는 인물은 소설가가 되기 전 하루키의 모습과 상당히 유사하다) 대단한 부와 명예는 없어도 묵묵히 주어진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소설에는 더러 등장하며 작가가 이들을 매우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반대로 부와 명예만 앞세우며 사는 구미코의 아버지와 오빠 와타야 노보루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우물에 들어간다든가 태엽을 감는다든가 하는 표현도 지루하지만 성실한 삶을 사는 모습을 은유적으로 나타낸 것 같다. 어쩌면 이런 현실감을 잃지 않는 느낌이 대중들, 특히 젊은 세대들의 깊은 공감을 얻어 하루키가 인기 작가로 성공한 것은 아닐까 싶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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