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궤적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난주 옮김 / 한길사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일본을 대표하는 역사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에세이집 <생각의 궤적>은 1975년부터 2012년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다양한 매체에 기고한 글들을 모은 일종의 '잡문집'이다. 별로라는 평을 많이 들었는데 직접 읽어보니 생각보다 좋았다. <로마인 이야기>, <바다의 도시 이야기> 등 대표작에 얽힌 후일담도 있어서 다시 읽어보고 싶어진 책도 여러 권 된다. 역사, 정치, 문화, 예술, 영화 등 그녀의 관심사를 총망라하는 점도, 다른 에세이집에서는 말하지 않은 사적인 이야기도 종종 보여 좋았다. 그녀가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를 존경한다는 사실도, 일본의 역사속 인물 중에서는 오다 노부나가를 좋아한다는 사실도 이 책을 읽고 알았다(오다 노부나가를 좋아할 것 같았다).  

 

 

1937년생인 그녀는 스물여섯 살이 되던 해에 돌아오는 대로 부모님이 소개해주는 남자와 맞선을 봐서 시집가겠다고 약속한 뒤 1년 일정의 유럽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막상 로마에 도착해보니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만큼 좋았고, 아예 그곳에서 평생을 살기로 마음을 정했다. 부모는 물론 그 누구도 응원하지 않는 삶을 사는 대가는 냉혹했다. 가쿠슈인을 졸업했을 정도이니 원래는 부잣집 딸이었을 터. 그러나 이탈리아에서 그녀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었고, 대학이나 연구기관에 적을 두지 않고 독학으로 이탈리아의 언어와 역사를 공부했다.  저자의 말대로 '제대로 된 일본 남자를 만나 제대로 결혼해서 제대로 유한마담이 되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삶은 혁명이고 파격이었다. 그런데 작가로까지 성공했으니 사람은 정말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고 생각하는 대로 살게 되는 것 같다.

 

 

혹자는 그녀의 글에 왜곡이 많고 편견이 심하다고 비난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일단 그녀는 역사'학자'가 아니라 작가다. 심지어는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지도 않았다. 그녀의 작품을 <해를 품은 달>, <성균관 스캔들> 같은 팩션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애초부터 학계에서 객관적으로 인정받은 자료가 아닌, 그녀가 독립적으로 수집하고 연구한 자료에 기반을 두고 쓰다보니 역사적 진실과 정확히 들어맞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는 그녀 자신도 인정한다. 심지어는 가짜 사료를 만든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런 그녀의 작품을 두고 왜곡이 많다, 편견이 심하다고 욕하는 것은 픽션을 픽션으로 보지 못하는 오류다.

 

 

또한 그녀는 지극히 마음에 충실한 사람이다. 정확히는 성적인 욕망. 수많은 나라들 중에 이탈리아에 끌린 것은 호방하면서도 낭만적인 라틴계의 남자들을 좋아했기 때문이고(라틴계의 핏줄을 잇고 싶어서 일본인이 아닌 라틴계 남자와 결혼했다는 고백을 한 적도 있다), 여자로서는 드물게 역사와 정치, 전쟁, 군사 같은 주제에 끌린 것, 패션과 영화에 해박한 것, 축구를 좋아하는 것 모두 남자를 이해하고 남자들과의 대화를 원활하게 잇기 위해서였다. 세상에는 부와 명예 또는 사회적인 시선 같은 외부의 영향에 좌우되는 사람이 많으며, 이는 글을 쓰는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시오노 나나미에게 글은 내면의 소리, 즉 끌어오르는 사랑과 애정을 표현하기 위한 일종의 러브레터같은 것이었다. 이런 글을 어찌 미워할 수 있으랴. 역시 나는 시오노 나나미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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