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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집짓기 - 마흔 넘은 딸과 예순 넘은 엄마의 난생처음 인문학적 집짓기
한귀은 지음 / 한빛비즈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오십대 중반인 어머니는 이따금씩 "늙으면 시골에 내려가서 살고 싶다." 라고 말씀하신다. 어머니라고 평생에 한 번 제 힘으로 집 짓고 살아보고 싶다는 소망이 없을 리 없다. 게다가 아버지는 오랫동안 건축업계에서 일하고 계신 데다가 건축사 자격증까지 가지고 계시니 허무맹랑한 꿈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인 나는 "엄마가?" 라는 회의적인 대답만 하기 일쑤다. 두 살 때 서울로 이사와 거진 평생을 도시에서만 산 엄마가, 그것도 주택 대신 아파트 생활만 고집해온 엄마가 시골 생활에 잘 적응할 리 없다는 얄팍한 편견 때문에 말이다.
엄마는 당신이 정말 좋아하는 집에 사신 적이 없다.
좋은 집은 언제나 먼 곳에 있었고, 그런 집을 꿈꿀 만한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셨기에,
아예 그쪽으로 눈길을 돌리지 않고 사셨다.
어쩌면 온돌이 있고 이불이 있는 집만으로도 감사해하셨는지도 모른다.
인테리어라고는 어쩌다 길에 핀 들꽃을 꺾어다가 아무 병이나 컵에 꽂아두는 것이 전부였던 엄마.
그런 엄마의 집에 대한 꿈을 눈앞에 드러내는 일은 좀 슬픈 일이기도 했다. (p.50)
경상대학교 국어교육학과 한귀은 교수의 <엄마와 집짓기>를 읽으면서 많이 반성했다. 저자 한귀은은 60여 년 동안 '자기만의 방'은커녕 번듯한 집 한 채 가져보지 못한 어머니를 위해 경남 진주에 집을 지었다. 건축 전문가도 아니고, 하물며 평소 집짓기에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이번엔 달랐다. 집 지을 땅을 고르는 일부터 설계, 시공, 인테리어까지 모든 과정에 직접 참여했다. 그러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집짓기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평범하다 못해 촌스럽다고 여겼던 어머니에게도 곱디 고운 취향이 있다는 것을, 싸우기만 하는 것 같았던 부모님 사이에 자식들은 모르는 속깊은 애정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또한 많은 것을 얻었다. 일단 부모님이 남은 생애를 편안하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보금자리를 얻었고, 하나뿐인 아들이 맘놓고 드나들 수 있는 외갓집을 얻었다. 가난한 집의 큰딸로 태어나 많은 것을 희생하면서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부모님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받았는지, 얼마나 큰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살았는지 깨달음도 얻었다. 아픈 기억으로 점철된 과거의 집을 허물고 새로운 추억을 담을 집을 짓는다는 것은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 돈도, 노력도 많이 드는 일임에는 분명하지만, 그만한 가치와 보람이 있다는 것을 알겠다.
인문학적 집짓기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삶이 깃들어 있는 집을 짓는 것이기 때문이다. (p.27)
엄마라고 왜 집 한 채 가져보고 싶은 소망이 없겠는가. 제 취향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집을 꾸며보고 싶은 바람이 없겠는가. 엄마와 삼십 년 가까이 한 집에서 살고 있지만, 막상 엄마가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지, 어떻게 집을 꾸미고 싶은지는 몰랐다. 그렇다는 것은 곧 엄마에 대해, 엄마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내가 무관심하고 무지했다는 것이 아닐까. 이다음에는 시골에 살고 싶다는 엄마의 말씀에 면박을 주는 대신 어떤 집에 살고 싶으시냐고 다정하게 여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