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링크로스 84번지
헬렌 한프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헬렌 한프의 <채링크로스 84번지>는 영국 건지 섬 주민들과 작가 줄리엣이 편지로 우정을 쌓는 과정을 그린 소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과 매우 유사하다. 일단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이 똑같고,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전후의 1940년대 중후반이 배경이라는 점, 주인공이 무명이나 다를 바 없는 작가인 독신 여성이며, 편지로 교류를 나눈다는 점 등이 비슷하다. 이쯤 되면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의 저자인 매리 앤 섀퍼가 헬렌 한프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섀퍼 여사의 변호를 위해(!) 두 작품의 차이점을 들자면, 첫째는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 같은 영국 땅에서 벌어진 이야기인 반면, <채링크로스 84번지>는 무려 미국 뉴욕에서 영국 런던에 걸친, 대서양을 넘는 우정을 그렸다는 것이다. 기술이 발전한 지금도 머나먼 외국 땅에서 편지나 소포를 받으면 더 반가운데, 그 옛날에, 그것도 그 넓은 대서양을 건너 편지와 책을 주고받는 일이 얼마나 흥미진진했을까. 그게 불과 반세기 전 일이라는 것도 신기하다. 둘째는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에서는 주인공 줄리엣을 중심으로 한 편의 러브스토리가 펼쳐지는 반면, <채링크로스 84번지>에 나오는 미국에 사는 작가인 헬렌과 영국 헌책방 직원 프랭크 사이에는 그 흔한 '썸씽'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음... 이게 현실이라는 것일까? 셋째는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 칠십 평생을 열정적인 독서광으로 살다 간 매리 앤 섀퍼가 쓴 픽션인 반면 <채링크로스 84번지>는 저자 헬렌 한프의 실제 경험담, 즉 논픽션이라는 것이다. 

 

 

허구와 실제의 간극탓인지,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은 해피엔딩인 반면 <채링크로스 84번지>는 허무할 정도로 새드엔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작품이 좋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도 좋지만, <채링크로스 84번지>가 훨씬 더 좋다. 이건 진짜니까. 이 사람들은 실제로 책을 사랑했으니까. 비록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에서 줄리엣이 그랬듯 작가로 성공하고 좋은 배필까지 얻는 행복은 못 가졌을지라도, 그 모든 걸 포기하더라도 책이 주는 즐거움을 택한 헬렌의 삶이야말로 뼈와 살이 있는, 진짜 인간의 이야기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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