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할 권리
김연수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좋은 책, 마음에 쏙 드는 책일수록 생각을 정리하고 감상을 남기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첫눈에 반한 이성의 매력 포인트를 한두 가지로 요약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유일까. 김연수의 <여행할 권리>가 내게는 바로 그런 첫눈에 반한 남자같은 책이다. 올해 2월 경에 읽은 이 책의 서평을 12월을 고작 4일 남짓 앞둔 오늘 부랴부랴 쓰는 것은 그런 이유다. 오랫동안 이 책이 좋은 이유를, 마음에 쏙 드는 이유를 고작 몇 줄의 남루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가 없었다. 

 

 

수평선 안쪽. 그 수평선 안쪽에서 우리는 태어났다. 잠잘 때도 우리 꿈의 배경은 그 수평선 안쪽을 넘어가지 못했다. 서태지도 나도. (p.13)

 

 

대륙에 연결된 반도에 태어났으나 북쪽이 휴전선으로 가로막혀 '섬 아닌 섬'에 살고 있는 한국인에게 여행이란 무엇일까. 저자는 한국인에게 여행이란 감히 넘어갈 생각조차 못하는 '수평선 안쪽'으로 넘어가는 도전이라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일본, 중국, 러시아, 독일, 미국 등 여러 나라의 여행기가 실려있지만, 분단이 되지 않았더라면 비행기가 아닌 기차나 버스를 타고 갈 수 있었을, '수평선 너머'에 있는 중국과 러시아의 여행기가 특히 재미있었다("민우는 한국의 킹카입니다"를 외치는 신화 짱팬 미국 소녀의 이야기도 못지 않게 재밌었지만 ^^)운전기사가 길을 못 찾는 바람에 중성적인 목소리의 무명가수가 부르는 현숙의 노래를 다섯 시간 동안 듣다가 결국엔 외워버렸다는 '웃픈' 이야기부터, 연변에서 함부로 술 마시라고 손 잡아끌며 권해서는 안되며 깐두부 좋아한다는 말도 해선 안되는 슬픈 사연, 조선의용군의 자취를 찾아간 중국의 시골마을에서 일본군의 만행에 대해 말하다가 소년처럼 울음을 터트린 할아버지 이야기까지...... 여행지 구석구석에서, 보통의 여행자들의 눈에는 띄지 않는 이야깃거리를 찾아내는 것이 역시 소설가다웠다.

 

 

소설가가 쓴 여행기, 하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가 유명한데, 이 책은 하루키 에세이의 미덕인 여유와 위트에 김연수 특유의 진지한 성찰과 번득이는 관찰까지 더해져 훨씬 좋았다. 처음 사서 오늘까지 서너번은 다시 읽은 것 같은데 읽을 때마다 좋다. 언제쯤 나의 '여행할 권리'를 누릴 수 있을까. 그것이 문제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