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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바보가 되었나?
마르탱 파주 지음, 용경식 옮김 / 열림원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는 공부해서 어디에 써먹느냐는 주변 사람들의 원성을 듣다 못해 천문을 보고 날씨를 예측, 착유기를 대량 매입해 그 해 올리브 농사가 잘 되자 비싼 값에 팔아 큰 돈을 벌었다. 박지원의 <허생전>에서 집에 틀어박혀 공부만 하던 주인공 허생은 아내의 타박을 못 이기고 장사에 나서 크게 성공했다.
여기 현대의 철학자, 프랑스의 허생이 있다. 프랑스 작가 마르탱 파주의 소설 <나는 어떻게 바보가 되었나>의 주인공 앙투안이다. 나이는 스물다섯. 직업은 대학교 시간 강사로 아람어를 비롯해 다수의 학위를 가지고 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지성을 저주한다. 똑똑한 것만으로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고 분노한다. 어떤 직업에 이바지할 수 있는 공부를 하지 못한 것도 화가 나고, 밥벌이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철학이나 역사학 같은 인문학의 책만 즐겨 읽고, 사람들과 쓸데없는 논쟁만 불러일으키는 정치, 사회 문제에나 관심을 가지는 것도 지겹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지성과 명석함을 멈추기로 결정한다.
첫번째로 도전한 일은 알코올 중독자 되기. 평생 공부만 한 범생이답게 도서관에서 술에 관한 책을 잔뜩 빌려 읽고 전문가에게 가르침도 받았으나 결과는 꽝이었다. 두번째로 도전한 일은 자살하기. 역시 범생이답게 자살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이른바 '자살 강의'에도 참가했으나 결국 포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바보 되기에 도전했다. 정치인이 하는 말은 그대로 믿고, 스포츠 경기와 드라마와 연예인에 열광하고, 그동안 좋아하던 것은 무시하고 무시하던 것은 좋아하기로 결정했다. 집세를 걱정하지 않고 남들 사는 것처럼 번듯하게 살아보고 싶다는, 아주 단순한 소망 때문에 말이다.
짧고도 쉬운 소설이지만 읽고나니 기분이 씁쓸하고 마음이 묵직해졌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자본론>을 읽다가 포기했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비웃을 게 아니다. 앙투안처럼 수많은 현대인들은 바보 되기를 자처한다. 공부한다고 쌀이 생기고 밥이 생기는 것도 아니요, 명예가 생겨봤자 죽고나서는 의미가 없는데, 그럴 바에는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 배부른 돼지가 되는 게 낫지 않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생각이 합리적이라고 납득하기엔 뭔가 찝찝하다. 끽해야 바보 아니면 돼지가 되는 거라면 사람들은 왜 사는 걸까? 왜 자식을 낳고 가정을 이루는 걸까? 왜 누구는 남들이 읽지 않는 책을 읽고 글을 쓸까? 남들이 부르지 않는 노래를 만들고 보지 않는 영화를 찍을까? 바보들이 비웃는 헛똑똑이가 아닌, 바보들을 바꾸는 참똑똑이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