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연습 - 서른이 넘으면 자기 마음에 책임을 져야 한다
황상민 지음 / 생각연구소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사람들은 나를 두고 '대학교수 황상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대학교수라는 것이 나를 정의해줄 수는 없다. 내가 대학을 떠나는 날 대학교수 황상민이라는 존재는 무의미하다. 관계란 그렇게 내 이름 앞에 수식어를 달아주는 꼬리표 같은 것이라 떼고 나면 그만일뿐, 영원하거나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관계 속에서만 자신을 규정한다. 관계를 떠나서는 자신을 말하지 못한다. 우리는 '넌 누구냐'는 질문에 누구의 아들, 어느 회사의 과장, 누구의 선배로 자신을 설명하는 일에 익숙하다. 그러다 보니 '알랭 드 보통의 에세이를 좋아하는 사람', '모차렐라 치즈 샌드위치에 아메리카노 한 잔을 점심으로 먹는 사람', '데미언 라이스의 내한공연을 챙겨보는 사람'으로 설명할라치면 '뭐야!' 싶은 표정으로 다시 한 번 쳐다본다. (p.44)

 

  

올해는 팟캐스트 방송을 참 많이도 들었다. 어느새 50회를 넘긴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시작으로 <손미나의 여행사전>, <라디오 책다방> 등 참 많은 방송을 들었다. 그 중에서 현재 가장 재미있게 듣고 있는 방송은 <벙커1 특강>이다. <성시경의 FM음악도시>에 나오실 때부터 애정해 마지않던 정신건강과학과(맞나? 쓸 때마다 헷갈린다) 전문의 김현철 선생님이 나오신다는 말을 듣고 여름에 듣기 시작했는데, 언제부터인가 강신주 선생님 강의도 듣고, 꿈 해설하는 고혜경 선생님 강의도 듣고, 임경선, 목수정 등 평소 좋아하던 저자들의 특강까지 챙겨듣는 팬이 되었다. <김어준의 색다른 상담소>는 <벙커1 특강>보다 예전에 방송된 것이라고 해서 안 듣고 있었는데, 어제 읽은 <독립연습>의 저자인 황상민 교수님도 'No 상담' 코너의 게스트로 나오셨다고 해서 부랴부랴 오늘부터 듣기 시작했다. 

 

 

<독립연습>은 'No 상담'의 내용을 엮은 책이다. 방송과 내용은 비슷한데 맛은 다르다. 방송은 상담 내용이 소리로 직접 전달되기 때문에 생생하게 다가오는 반면, 책은 활자로 정제되어 있기 때문에 생각할 여지를 준달까. 무엇보다도 책에는 그동안 내가 황상민 교수님의 책을 여러 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르고 있었던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많아서 좋았다. 워낙 이력이 화려하고 매체에도 많이 나오셔서 편안한 삶을 살아오신 줄로만 알았는데, 학창시절부터 문제아(?)임을 자처했던 자기 자신을 연구하기 위해 심리학과에 진학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부모님의 뜻을 거스르고 심리학과에 진학했고, 안 좋은 학점으로 남들 다 말리는 유학을 다녀왔으며, 키가 작고 못생겨서 내심 포기하고 있던 연애에까지 성공, 결혼도 했다. 이 정도면 남에게 'Yes' 대신 'No'라고 말하라는 'No 상담' 전문가, '독립'연습의 저자로 불릴 자격이 있지 않나 싶다.

 

 

저자는 현재 2,30대 젊은이들이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밥벌이에 발목을 붙잡히기 일쑤인 이유는 독립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독립이란 경제적인 독립보다는 부모, 형제, 연인, 친구 등 타인에 대한 의존, 남의 시선이나 사회적 관습, 대중매체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사회적, 정서적 독립의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심리학자인 저자는 "모든 심리학은 내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고 설명한다. 성공하고 싶다면, 행복해지고 싶다면 먼저 나를 알아야 한다. 내 욕구, 내 기대를 모르는데 어떻게 성공을 하고 행복해질 수 있겠는가? 저자는 그 유명한 '마시멜로 실험(연구자의 지시에 따라 앞에 놓인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기다렸다가 먹은 아이들의 학업 성적이 기다리지 않고 먹어버린 아이들의 학업 성적에 비해 높았다는 내용의 실험)'의 예를 들며 "마시멜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도 내가 좋아하지 않으면 길거리의 돌멩이나 다름없다." (p.187) 라고 조언한다.

 

 

책에는 진로, 취업, 연애, 결혼, 가족 등 다양한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대부분 한번쯤 고민해봤거나 고민하고 있거나, 친구나 선배, 후배의 입으로 들어본 것들이다. 가령 미대에서 원하는 영화미술을 계속할지, 아니면 부모님이 원하는대로 공무원시험 공부를 할지 고민하는 대학생이 있다. 저자는 부모님 말씀을 거역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라든가, 일단 경제적, 직업적 안정이 보장되는 공무원이 되어서 나중에 미술을 하라는 식의 조언을 하지 않는다. 고민을 하고 있다는 자체가 둘 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돌직구를 던진다. "내게 있는 무언가를 쓰지 않고 버려두었을 때 아무런 삶의 희망을 느끼지 못한다면, 바로 그 '무언가'가 내 재능이다." (pp.249-51) 간절히 하고 싶은 일이라면 부모님이 뭐라든, 돈이 잘 안 벌리든 벌써 하고 있을 것이다. 학창시절에 부모님 몰래 만화책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독립, 나는 잘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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