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엮다 오늘의 일본문학 11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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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여섯 살 때 쯤이던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오신 아버지가 내 손에 어린이용 국어사전 한 권을 들려주셨다.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대개 그러듯이 시도때도 없이 '이게 뭐야?' 라고 묻는 나를 보다 지친 아버지가 스스로 찾아보라며 사주신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가 현명하셨던 것 같기도 하고 매정하셨던 것 같기도 한데, 그 때는 그저 그 사전이 마음에 들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모르는 글자의 뜻을 찾거나 그림책 보듯이 한장 한장 읽었다. 그러는 통에 얼마 안 가 표지가 낡고 종이가 뜯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애용했던 그 사전. 그 후 이사를 여러 번 하는 통에 잃어버린 게 아쉬울 따름이다.
 

출판사, 그 중에서도 사전편집부의 이야기를 그린 미우라 시온의 대표작이자 서점대상 수상작 <배를 엮다>를 읽으니 그 사전 생각이 났다.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을 다 읽자마자 읽은 터라 비교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일단 고집스러우리만치 옛 것을 수호하는 사람들의 장인정신을 그린 점은 같다. 그러나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은 제목대로 미에현 가무사리 숲에서 일하는 임업 노동자들의 생활을 그린 책이라면, <배를 엮다>는 도쿄 도심에 위치한 출판사에서 일하는 출판편집자들의 생활을 그렸다는 점이 다르다. 또한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은 주인공 유키가 가무사리 숲에서 보낸 처음 일 년만 그린 반면, <배를 엮다>는 아라키에서 마지메, 마지메에서 기시베로 몇십 년에 걸쳐 대가 이어지는 과정을 그린 점이 다르다.


줄거리는 이렇다. 대형출판사 겐부쇼보 사전편집부의 베테랑 편집자 아라키는 정년 퇴임을 앞두고 걱정이 많다. 사전편집부의 자존심을 걸고 새로운 사전 <대도해>를 출간하기로 계획했는데 이를 맡아줄 후임자를 찾기가 힘들어서다. 어렵게 그는 영업부에서 괴짜 취급을 받는 마지메의 존재를 알아내고 그를 영입한다. 행색도 초라하고 말도 어눌하고 짝사랑하는 여인에게 고백도 제대로 못하는 얼푼이 마지메. 하지만 이름처럼 성실하고(마지메는 일본어로 '성실하다'라는 뜻) 언어에 대해서는 천부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다. 그런 마지메가 어엿한 사전편집자로 성장하는 과정과 그를 돕는 인물들의 변화와 애환을 보는 것이 이 소설의 가장 큰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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