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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
미우라 시온 지음, 오세웅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졸업하면 적당히 아르바이트나 하면서 살려고 생각했"던 열아홉살 소년 히라노 유키는 고등학교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부모님과 선생님의 계략(?)에 휘말려 억지로 임업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된다. 직장이 있는 곳은 요코하마에서 신칸센을 타고도 몇 시간이 걸리는 미에현 가무사리 마을. 휴대폰도 안 통하고 인터넷도 안 되는 첩첩산중 시골마을에 도착한 유키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동생이 강추해서 읽게 된 미우라 시온의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은 의외로 '느긋하지' 않았다. 일단 주인공 유키가 가무사리 마을에 가기까지의 과정이 황당하고(돌연 우리 부모님이 나를 새우잡이배에 태운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상상도 하기 싫다), 도착한 다음날부터 고된 훈련을 받고 힘든 육체 노동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착잡하고 바빴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열아홉살 소년이 가혹한 노동 현장에 내팽개쳐지는 과정을 그린, 이른바 사회파 소설의 하나로 착각하면 오산이다. 그야 일손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본 임업의 현실을 그리고 속도만을 중시하는 현대 도시 문명을 비판하기는 하지만, 실수투성이 유키가 어엿한 일꾼이자 가무사리 마을의 일원으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 소설이나 개성있는 인물들이 어우러지는 코믹 소설에 가깝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통 의식과 생활 풍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일본 시골 마을의 정경과 자연의 신비스럽고 놀라운 힘을 그린다는 점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이 떠오르기도 했다.
미에현이라고 하니 오에 겐자부로의 고향이 그곳이었던 것이 생각난다. 어린 시절을 담은 자서전 <나의 나무 이야기>에서 그는 집 바로 뒤에 있는 큰 숲이 있어서 그곳에 얽힌 추억이 많다고 밝힌 바 있다. 오에의 추억이 무려 지금으로부터 6~70여 년 전의 것인데, 2000년대인 지금도 가무사리 마을 사람들처럼 숲을 터전으로 사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나무라고는 고작해야 크리스마스 트리나 길가 또는 공원, 어쩌다 가는 산에서나 보는 도시 사람인 내가 그들 눈에는 더 낯설겠지? 앞으로는 나무를 볼 때마다 오에가 뛰놀았고 유키가 가꾸고 있는 미에의 숲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