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여자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림 - 애인, 아내, 엄마딸 그리고 나의 이야기
김진희 지음 / 이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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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적령기라서 그런가. 알콩달콩 예쁘게 사는 신혼부부나 귀여운 아이들을 보면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래서 결혼한 친척이나 친구, 선배들에게 결혼을 할까 말까 진지하게 물어보면 의외로 하지 말라는 경우가 태반이다. 왜냐고 물으면 다들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사랑이 좋아도 같이 살기 시작하면 사랑만으로 살 수가 없다. 결혼 때문에 일을 포기하고, 살림이나 아이 때문에 또래들처럼 자유롭게 살지 못하는 스트레스를 네가 감당할 수 있겠냐.....



<결혼한 여자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림>의 저자에게 물어도 똑같은 대답이 돌아올 것 같다. 저자 김진희는 1975년 안동에서 태어나 경희대 영문과를 졸업했으며 영국의 명문 디자인 스쿨 세인트마틴에서 유학했다. 졸업 후 삼성전자에서 영어 통번역사로 일했으며, 결혼 후에는 한 남자의 아내이자 한 아이의 엄마로 전업주부의 삶을 살고 있다. 학벌이면 학벌, 직장이면 직장, 결혼이면 결혼..... 어느 하나 부족할 것 없이 화려한 그녀의 이력만 봐서는 결핍이나 아픔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저자는 말한다. 결혼은 화려한 하이힐이 아니라 막상 신으면 '발이 아픈 신발'이고, 남편이라는 사람은 내 곁에서 먹고 자는 '이방인'이라고.



어린 시절과 영국에서의 추억, 결혼 후 시작된 가사노동과 육아 스트레스, 시댁 식구들과의 갈등, 남편의 무관심과 오해로 인한 고통 등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풀어쓴 저자의 글은 때로는 아름답고 때로는 아팠다. 남편은 물론 가족, 친구 그 누구에게도 마음 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던 저자가 우연히 동네 친구 하나를 사귀었는데 그 친구가 이사를 가면서 헤어지게 되는 대목에서는 나까지도 눈물이 났다. 이별은 늘 슬프지만, 가까운 곳에게서 사랑을 찾지 못하고 먼 곳에서 사랑을 구해야 하는 저자의 아픔이 절절하게 다가왔다. 동네에서 종종 유치원생, 초등학생 또래의 아이를 둔 어머니들이 카페나 공원에 앉아 수다를 떠는 모습을 보는데, 이제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흐뭇하면서도 마음 한 켠이 아릴 것 같다.



이 책에 실린 그림들은 영국 유학 시절 미술관에서 사모은 엽서들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게 또 슬펐다. 미래에 대한 이런저런 꿈을 꾸며 엽서를 사던 이십대 초반에는 행여 이런 경험을 하고 이런 글을 쓰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으리라. 다행인 건, 저자의 어머니 세대만 해도 힘든 걸 힘들다고 아픈 걸 아프다고 말할 수도 없었지만, 저자 세대에 이르러서는 마음 속 이야기를 소리 내어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더 잘된 일은 저자가 이 책을 쓰면서 작가의 꿈을 다시 꾸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비록 멀리 돌아왔지만,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영국에서 디자인 수업을 받은 저자가 글과 미술이 어우러진 이런 근사한 책을 만든 것은 우연이 아니다. 멋진 작가가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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