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나무' 아래서
오에 겐자부로 지음, 송현아 옮김, 오에 유카리 그림 / 까치 / 200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건방지게도, 이것이야말로 좋은 일이 아니었지만, 나 혼자서 공부해보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나서 찾아낸 공부방법은 교과서에든 보통 책에서든 상관없이, 눈에 띄는 재미있는 말, 아니면 옳다고 생각하는 말을 노트에 적어서 외우는 방법이었습니다. 또한 책에 나오는 외국어나 인명을 있는 대로 적어두었다가 그것을 다른 책에서 조사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한층 자유스럽게 한층 적극적으로 한 일 - 그리고 지금도 계속하는 일 - 인데, 지금 말한 방법으로 알게된 책에서 다음 책으로, 스스로 읽을 책을 찾아서 연결시켜가는 방법이었습니다." (pp.100-1) 

 

"어린 나는 그때 읽어도 이해는 할 수 없었지만, 언젠가는 읽으려고 결심한 저자의 이름과 책 이름을 노트에 적어두었습니다. 그리고 어째서 그때에 언젠가는 읽어보려고 생각했는지 스스로도 흥미로운 점을, 그 나이의 내가 이해하는 범위 내에서 적어두었습니다. ... 그리고 몇 년이 자니서 실제로 그 책을 읽어보고 생각했던 대로 좋은 책이라고 스스로 확인하게 될 때에는 그저 즐겁기만 합니다." (pp.109-10)

 

 

최근 일본 정부의 움직임이 하 수상하다. 199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반전(反戰) 지식인으로도 유명한 오에 겐자부로가 얼마나 속이 상할까. 오에 겐자부로가 자신의 유년기와 소년기를 회상하며 쓴 책 <나의 나무 아래서>를 읽은 지 얼마 안 된 터라 마음이  안 좋다.

 

 

1935년생인 저자는 가난과 전쟁의 공포 속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고 열 살이 되던 해에 패전을 맞았다. 그 때부터 이미 남들보다 배는 예민한 감성을 가지고 있던 저자는, 어제까지 분명 '천황 만세, 미군 타도'를 외치던 학교 선생들이 패전과 동시에 '천황은 인간이고 미국은 천사'라며 뻔뻔하게 말을 바꾸는 것을 보고 일찌감치 어른들의 모순과 사회의 부조리에 눈을 떴다. 대신 저자는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온 민간 신앙에 눈을 돌렸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나의 나무' 이야기도 그 중 하나다. '나의 나무'는 저자의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나무인데,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나무를 한 그루씩 가지고 있고, 죽을 때가 되면 그 나무로 돌아간다는 이야기였다.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이고, 죽어도 생명이 완전히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로서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의 이 이야기는, 언뜻 듣기에는 신비로운 옛날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생명의 질서와 원리를 옛 사람들의 언어로 표현한, 지혜의 정수다. 저자는 정권이나 이데올로기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이야기 말고,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 가치가 닳지 않는 '진짜 이야기'의 힘을 이 때부터 믿기 시작한 것 같다.

 

 

모순적인 교사들의 교육 방식에 질린 저자는 일찍이 자기만의 공부 방법을 개발하기도 했다. '건방지게도, 이것이야말로 좋은 일이 아니었'다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지금 가장 관심있고 궁금한 내용을 노트에 적은 뒤 관련된 다른 책을 찾아 읽는 것을 반복하는 것만큼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효과적인 공부법이 또 있을까 싶다. 게다가 일본 최고의 명문인 도쿄대 불문과에 진학했으니 이 '건방진' 독학법이 입시에 있어서도 통하는 것이리라. 독서법도 주목할 만하다. 나도 관심있는 저자의 이름과 책 이름을 따로 적어두고 정기적으로 구입을 하지만 읽고 싶은 이유와 흥미로운 점까지는 적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적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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