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의 한 다스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문화인류학, 개정판 지식여행자 7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이현우 감수 / 마음산책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나에게는 두 분의 '마리 여사'가 있다. 한 명은 <테르마이 로마이>를 그린 만화가 야마자키 마리, 다른 한 명은 러시아어 동시통역사이자 다수의 책을 남긴 작가 요네하라 마리다. 왜 이 분들을 좋아하나 생각해봤더니 두 사람 다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여러 곳을 떠돌면서 산 덕에 언어와 문화 차이에 민감하고 개방적이며, 그 경험을 예리한 관찰, 독특한 상상력과 더해 각각 그림과 글로 표현했기 때문인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중에서도 요네하라 마리는 일본에서 공산주의자의 딸로 태어나 체코 소재의 소비에트 계열 학교를 다녔으며 귀국 후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전공, 러시아어 동시통역사로 활동한 경험을 살려 각 문화권의 역사와 언어, 관습 등의 차이를 분석하는 책을 주로 썼다. 
 

이번에 읽은 <마녀의 한 다스>도 그 중 하나다. 문화적 차이로 인해 빚어지는 오해와 갈등을 다룬 이 책은 언어와 음식부터 국제정치 이슈까지 다양한 분야를 그녀만의 독특한 프레임으로 재해석했다. 그녀가 소개하는 문화 차이란 이런 것이다. 서양에서는 오랫동안 숫자 12를 길한 숫자로 여기고 13을 불길한 숫자로 여겼다. 왜 하필이면 13일까? 열세 번째 제자가 배신자였던 '최후의 만찬' 때문에? 교수대의 층계가 13개라서? 저자는 우연히 '마녀의 한 다스'라는 말을 접하고 나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마녀의 한 다스'란, 원래 다스(영어로는 dozen)는 12를 뜻하지만, 기독교 문화권에서 악마시하는 존재인 마녀는 (불길한 숫자인) 13을 한 다스로 센다는 뜻이다. 즉, 숫자 자체가 불길하고 부정한 것이 아니라, 그 문화권에서 배척하거나 이단시하는 것과 연결될 때 그런 오명을 쓴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근거로 저자는 중국과 일본 등 불교 문화권 국가에서 13을 길한 숫자로 여겼다는 사실을 제시한다. 송대에 완성된 불교법전은 13경, 중국 불교는 13종으로 되어 있으며, 음력 3월 13일(현재는 4월 13일)에는 13세 소년, 소녀가 보살님을 참배하는 '13참배'라는 행사가 있는 것이 그 예다.


그렇다면 이런 오해와 갈등을 극복할 방법은 없을까? 저자의 글에서 한 가지 답을 찾았다. 바로 예술 작품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뛰어난 소설, 연극, 만화, 영화, 드라마에는 때때로 그런 이상한 힘이 숨어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다른 이'에게 품는 소원한 감정과는 반대로 친밀해지고픈 마음을 일으키는 픽션 말이다. (중략) 인간 생활과 감정의 주름 하나하나를 개별적,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그리면 그릴수록 인간의 보편적인 공통점을 인식하게 되는 역설적인 결과에 이른다. (중략) 매크로 수준으로는 역사 교과서에서 그저 한두 줄에 끝나버리는 사건에 불과하다. 하지만 소설가의 붓은 마치 현미경처럼 그 한두 줄 뒤에 숨은 마이크로한 세계를 보여준다." (pp.235-7) 역사적인 이유로 무조건 '일본은 나쁘다'고 믿었던 내가 일본 드라마, 영화, 음악을 통해 일본 문화에 마음을 열고, 얼마 전까지 잘 알지도 못했던 스웨덴이라는 나라를 <밀레니엄> 시리즈를 읽고 좋아하게 된 것처럼, 예술 작품은 영토나 언어, 역사, 구체적인 지식의 한계를 뛰어넘어 인간 대 인간으로 느끼고 좋아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비단 예술 작품뿐일까. 책에 따르면 요네하라 마리는 대학원 졸업 후 가정교사 일로 연명하며 직업을 탐색하다가 도서관 여성학 서가에서 우연히 발견한 <여자, 서른에 일어서다>라는 책에서 어느 러시아어 통역사의 글을 읽고 기적처럼 통역의 세계와 만났다. 대학 졸업 후 아르바이트와 프리랜서 일로 연명하며 직업을 탐색하던 내가 우연히 요네하라 마리를 알게 되어 책의 세계에 빠져든 것처럼 말이다.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좋은 글은 다른 세계로 연결하는 힘을 지니는 것 같다. 앞으로도 요네하라 마리의 글을 통해 내가 모르는 세계를 알고 싶은데, 너무 이른 바람으로 그녀를 데려간 하늘이 야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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