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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의 셰익스피어 순례
빌 브라이슨 지음, 황의방 옮김 / 까치 / 2009년 7월
평점 :
영국 여왕이 인도와도 바꾸기 싫다고 했다는 세계적인 문호 셰익스피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셰익스피어에 대한 기록은 별로 남아있지 않다. 문제는 기록이고 뭐고 셰익스피어에 대해 아는 것은커녕 작품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어서 얼마 안 남아있는 기록조차도 잘 모른다는 것. 무식을 보충할 겸, 잡학의 대가 빌 브라이슨이 쓴 셰익스피어 해설서 <빌 브라이슨의 셰익스피어 순례>를 읽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물론이거니와 개인사에 대해서도 새로 알게 된 것이 많다. 가장 놀란 것은 부인 이름이 앤 해서웨이라는 것. 앤 해서웨이라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출연했고 <레 미제라블>에서 팡틴을 연기했던 그 예쁜 여배우 아닌가(내 기억엔 영화 시상식 파티에서 다니엘 크레이그와 손가락 배틀을 한 여배우로 더 각인되어 있지만 ㅋㅋ)! 배우 앤 해서웨이의 이름이 가명인가 해서 찾아봤더니 원래 이름이 '앤 재클린 해서웨이'로 본명이 맞다고 한다. 흔한 성인가 보다.
셰익스피어가 당시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지나칠 정도로 자유분방한 작가였다는 대목도 인상적이었다. "그는 <줄리어스 시저>에서는 제목이기도 한 주인공을 연극이 채 반도 진행되기 전에 죽이기도 했다. (중략) 또한 자주 관객들에게 그들이 실제 세계가 아니라 극장 안에 있음을 상기시키는 대사를 집어넣곤 했다. <헨리 5세>에서 그는 "이 무대가 프랑스의 광대한 전쟁터를 담을 수 있을까?" 하고 물었고, <헨리 6세> 제3부에서는 관객들에게 "우리 연기를 여러분들의 상상력으로 보충해달라"고 간청하기도 했다." (p.117) 다른 건 몰라도 '우리 연기를 여러분들의 상상력으로 보충해달라'는 대사는 현대 연극에서도 보기 힘든 게 아닐런지.
극작가로 크게 성공하여 높은 수준의 부와 명예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극작가라는 직업의 사회적 지위가 낮았기 때문에 상당한 비용을 들여 집안의 문장을 만들었다든가, 후손들이 그의 생애를 기록하거나 작품을 보전하는 일을 전혀 하지 않고 죽어버리는 바람에 생판 남인 헤밍과 콘델이라는 자가 겨우 그의 작품을 후대에 남겼다는 사실 또한 처음 알았다. 그의 작품이 후세에 남겨지지 않았을 생각만으로도 아찔한데, 어쩌면 셰익스피어가 운이 좋은 케이스이고, 대부분의 뛰어난 작가들이 이런 식으로 묻혀졌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소름이 돋는다.
박학다식한 것으로 둘째 가라면 서러울 빌 브라이슨이 쓴 책 답게,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개인사 외에도 당시 영국 사회상과 정치적인 분위기도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담배는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이듬해에 런던에 들어왔는데, 성병, 편두통, 심지어는 역병을 고치는 치료제로 알려져 어린 아이들에게도 담배를 권장했고, 심지어 영국의 명문 이튼 스쿨에서는 담배를 피우다가, 가 아니라 '담배를 버리다가' 들키면 혼이 났다고 한다.
셰익스피어라는 걸출한 극작가가 탄생할 만큼 연극의 인기가 높았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16세기 당시 런던 노동자들은 중노동에 시달렸다. 겨울에는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여름에는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무려 12~14시간 노동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일 대낮에 공연하는 연극을 보기 위해 찾아온 노동자들로 극장마다 장사진이 생겼다. 일을 마치고 밤늦게 집에 돌아와서 곧장 잠자리에 들지 않고 TV나 인터넷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 같은 걸까? 아무 생각 없이 남이 하는 공연을 보며 노동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고 싶어 하는 마음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비슷한가 보다. 또 그런 헛헛한 마음이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수많은 작가들은 탄생시킨 것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