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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보수 일기 - 영국.아일랜드.일본 만취 기행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드라마와 영화로 제작되어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끈 바 있는 일본만화 <노다메 칸타빌레>에서 남자 주인공 치아키 신이치는 뛰어난 실력 때문에 해외로부터 러브콜이 끊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비행기에 타는 것이 무섭다는 이유로 포기했다. 그런데 이거 아는가? <삼월은 붉은 구렁을>, <흑과 다의 환상>, <밤의 피크닉> 등 미스터리, SF, 판타지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소설로 국내에서도 많은 수의 팬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 작가 온다 리쿠 역시 치아키 못지 않은 비행기 공포증 환자(?)라는 것을 말이다.
<공포의 보수 일기>는 온다 리쿠가 비행기 공포증에도 불구하고 영국과 아일랜드, 일본 본섬에서 떨어져 있는 오키나와까지 비행기로 여행한 이야기를 담은 (저자는) 공포스럽지만 (독자는) 유쾌하고 즐거운 여행기다. 비행기 타는 게 무서워서 마흔이 되도록 해외여행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저자답게, 이 책에는 여느 여행기에서나 볼 수 있는 여행에 대한 환상이나 로망보다는 비행기 타는 게 무섭다, 무사히 도착해서 안심이다, 도착해서도 비행기로 다시 이동하는 게 걱정이다 등등 여행 기분을 팍 죽이는 이야기 투성이다. 그런데 뭐, 누구나 나처럼 여행을 좋아하고 비행기 타는 걸 겁내지 않는 건 아니니까. 오히려 이런 사람도 있구나, 이런 사람에게는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여행이라는 게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일이겠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간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점이 바로 이 책만의 매력이자 묘미가 아닐까.
저자의 비행기 공포증 말고 이 책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소재가 바로 '술'이다. 생애 첫 해외여행지로 굳이 영국과 아일랜드를 택한 이유가 작가로서 여러 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문학의 나라'에 가보고 싶기 때문인 줄 알았는데, 책을 읽다보니 그저 술을 좋아하고 술 마시는 분위기를 좋아하는 '술꾼'으로서 '펍의 나라', '맥주의 나라'에 가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저자는 엄청난 양의 술을 마셨다. 심지어는 해외에서 마신 것으로도 모자라 일본 요코하마에 있는 기린 맥주 공장, 삿포로에 있는 아사히 맥주 공장, 오키나와에 있는 오리온 맥주 공장까지 방문해서 음주를 즐겼다. (^^) 영국, 아일랜드 여행을 마치고 저자는 "이것이 '공포의 보수'일까" 라며 제법 근사한 말을 했지만, 내 생각에 저자에게 있어 '진정한 공포의 보수'는 술기운으로 공포를 이겨보겠는 핑계로 들이부었던(!) 맥주의 맛이 아니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