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여행자 도쿄 김영하 여행자 2
김영하 지음 / 아트북스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도시에 대한 무지, 그것이야말로 여행자가 가진 특권이다. 그것을 깨달은 후로는 나는 어느 도시에 가든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말을 다 신뢰하지는 않게 되었다. 그들은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앎에 '갇혀' 있다. 이런 깨달음을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도 적용해보면 어떨까? 갇힌 앎을 버리고 자기가 살고 있는 도시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한 번도 가지 않은 곳, 이를테면 돈암동의 골목길이나 노량진의 수산시장을 헤매며 그곳에서 여행자처럼 사진을 찍고 음식을 사먹고 그때까지 그 동네에 대해 갖고 있던 선입견을 하나씩 교정해가는 것이다. (p.236)



2008년에 나온 속편 <김영하 여행자 도쿄>는 전작보다 훨씬 알차고 재미있다. 가장 큰 이유는 내가 하이델베르크에는 가본 적이 없지만 도쿄에는 가봤기 때문일 것이다. 시부야, 오다이바 등 이미 다녀오고 질리도록 본 장소들이 소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시선을 통해 다시 보니 어찌나 새롭고 반갑던지. 게다가 저자가 도쿄에 간 시기와 내가 도쿄에 간 시기가 일년 밖에 차이가 안 나서인지 여행지의 풍경이나 사람들의 옷차림, 여행 루트도 상당히 비슷했다. 책 맨 앞에 실린 소설도 하이델베르크 편에 실린 소설 <밀회>보다 더 재미있었다. <마코토>라는 제목의 소설인데, 한 여자 대학원생이 교환학생으로 온 일본인 남자를 짝사랑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그린 일종의 연애소설이다. 짝사랑이라면 나도 지지 않는 편이라서 여자 주인공의 상황에 무척 공감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새드엔딩일 줄 알았는데 나름 해피엔딩으로 끝난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

  


에세이의 비중도 전작에 비해 훨씬 높다. 에세이 중에서는 시부야에 대한 글이 인상적이었다. 긴자나 에비스, 다이칸야마 같은 이른바 부촌에서만 주로 놀고 시부야 같은 애들이나 가는 동네에는 가지 않는다는 일본인 여성의 말에 저자는 '여행자의 특권'을 생각했다. '알고 있다'는 오해나 착각만큼 위험한 것이 또 있을까? 언젠가 지방에서 학교를 졸업한 사촌이 신촌에 있는 나의 모교에 놀러온 적이 있다. 그 전까지 나는 인근 학교 앞에는 대형 건물이 몇 채씩 있고 차량 통행도 많아서 그에 비하면 우리 학교 앞은 소박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촌은 학교 주변이 번화가라는 사실 자체가 신기하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촌이 졸업한 학교에서는 오랫동안 차를 타고 나가야 겨우 식당이나 카페 같은 곳이 나오니 신기할 법도 했다. 그에 비하면 식당도 많고 카페도 많고 심지어는 외국인 관광객도 많은 우리 학교 앞 풍경이 화려하다면 화려하다. 



며칠 전에는 늘 차를 타고 지나치던 근처 동네를 일부러 걸어봤다. 차에서 봤을 때는 평범한 주택가였는데 직접 걸어보니 그 안에는 평일에도 시끌벅적한 시장도 있고, 근처 학교의 초등학생들이 뛰어노는 아담하고 예쁜 공원도 있었다. 그야 동네 이름이나 시장 이름, 어떤 초등학교가 있는지는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알고 있다'는 착각 때문에 하마터면 이런 풍경을 보지 못하고 놓칠 뻔했다니. 아찔했다. 어쩌면 몇 년 전에 갔던 도쿄에서도 '알고 있다'는 생각에 놓친 것들이 있지 않을까? 확인하러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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