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의 여행자 하이델베르크 김영하 여행자 1
김영하 지음 / 아트북스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어떤 소설가들은 글이 잘 안 써지면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여행을 간다고 한다. 반면 어떤 소설가들은 평소에도 잘 안 써지는 글이 여행을 간다고 해서 잘 써지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대표적이다. 하루 일과도 철저하게 규율하고 절제하는 그의 라이프 스타일을 생각할 때 확실히 여행은 득보다 실이 많은 이벤트일런지도 모르겠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글을 쓰는 틈틈이 세계 곳곳을 부지런히 여행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까?).

 

 

소설가 김영하는 어떨까? 잘은 몰라도 <여행자> 시리즈만 봐서는 전자임에 틀림없다. <여행자> 시리즈는 저자가 2007년과 2008년에 각각 독일 하이델베르크와 일본 도쿄를 여행하고 그곳을 배경으로 쓴 소설과 직접 찍은 사진, 에세이 등으로 구성한 독특한 형식의 여행기다. 여행지에서 바로 소설을 쓴 건지 아니면 여행을 다녀온 후 쓴 건지는 몰라도 여행지에서 받은 영감으로 <밀회>, <마코토> 같은 멋진 소설을 쓴 것을 보면 전자가 분명하다. 

 

 

시리즈의 첫 편인 <여행자>에는 하이델베르크가 배경인 <밀회>라는 제목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처음에 나는 이 책이 순전히 여행 에세이인 줄만 알았기 때문에 다짜고짜(?) 소설부터 나와서 내심 놀랐다. 그런데 소설 다음에 나오는 사진과 에세이의 내용이 소설의 내용과 묘하게 겹치는 것을 깨닫고 더 놀랐다. 소설가들은 이렇게 여행을 하는구나! '살인자의 기억법', 이 아니라 '소설가의 여행법'을 새삼 깨달았다.

 

 

책에는 소설과 에세이도 분명 실려 있지만 사진집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사진의 비중이 높다.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사진의 완성도와 수준이 웬만한 프로 사진가의 작품 못지 않아서 사진에 대한 저자의 오랜 식견과 깊은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심지어는 에세이도 사진에 대한 글이 대부분이었는데, 글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사진에 취미가 없는 나로서는 살짝 지루한 감도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없는 취미라도 만들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던 대목이 있다. 2005년에 저자는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을 올라가다가 장 보드리야르를 만났다. 그 때 보드리야르는 G1이라는 이름의 카메라를 들고 있었는데, 마침 그날 그 카메라를 집에 두고온 저자는 만약 그 카메라가 있었다면 이 세계적인 철학자와 어떤 인연을 맺었을지 모를 일이라며 아쉬워했다. 보드리야르는 못 만나도(2007년에 타계하셨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나 연예인과 카메라 한 대를 인연으로 알게되는 일이 나한테도 생길 수 있을까? 그러려면 먼저 카메라를 사고 사진에 취미를 붙여야 할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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